[사설]‘코드’따라 나눈 정책연구비

  • 입력 2004년 8월 12일 18시 42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가 발주한 연구용역이 ‘제 식구’들에게 집중된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최근 3년 반의 연구과제 89건 중 79건이 내부인사에게 맡겨지고, 용역경비 37억4800만원 중 93%인 34억8800만원이 이들이 주도한 연구팀에 돌아갔다. 정책 연구용역이라면 외부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더 객관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은 상식이다. 이를 대통령 산하 위원회 내부인사들이 독차지한 것은 권력 편입세력의 도덕적 해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정책기획위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소화해 균형 잡힌 정책을 창출해야 할 기구다. 그런데 ‘코드’가 맞는 인사들끼리 연구를 독점한다면 그 밥에 그 나물의 편파적 정책이 나올 소지가 크다. 이러니 국가정책이 국민통합의 정신을 살리지 못한 채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나눠 먹기식 연구비 집행에 대한 관련자들의 태도는 당돌하기 짝이 없다. 과제를 맡은 한 인사는 “대한민국에서 연구를 잘한다는 사람들이 정책기획위에 있는데 굳이 외부용역을 줄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고 한다. 자신들만 실력 있고 다른 사람은 볼 것도 없다는 오만한 선민(選民)의식이다. 이들의 정책연구 결과가 국민에게 어떤 도움이 됐는지 묻고 싶다.

발밑에서 벌어진 이런 정책연구비 집행행태를 알고 있었는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와 감사원은 연구용역 선정 과정의 불공정성 불합리성 낭비성 등을 조사해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 국민 혈세가 대통령 주변 학자들의 쌈짓돈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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