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국회법 무시하는 ‘개혁국회’

  • 입력 2004년 6월 8일 18시 42분


“언제 국회법이 제대로 지켜졌습니까. 이 정도면 잘 하는겁니다.”(열린우리당 A의원)

“처벌 규정도 없는데 뭐가 문제가 됩니까.”(한나라당 B의원)

‘개혁’을 내걸고 출범한 17대 국회가 시작부터 위법과 파행으로 점철되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 내에서는 아무도 이를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다.

우선 여야는 국회부의장 배분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5일 첫 본회의 때 국회의장만 선출했다. 2명의 부의장은 이틀이 지난 7일 본회의를 다시 열어 선출했다. 국회법 제15조는 의장과 부의장 선거는 총선 이후 첫 본회의에서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야는 국회법 위반에 대해 그 흔한 유감성명 하나 내지 않았다.

8일에는 열린우리당 이종걸(李鍾杰),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원내수석부대표가 국회 원구성 협상을 계속했다. 그러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상임위원회 전환, 상임위원장 배분 등을 둘러싼 자리싸움으로 국회법이 정한 시한을 넘기며 상임위원 선임과 상임위원장 선출을 또다시 미뤘다. 국회법 제48조에 따르면 교섭단체 대표는 총선 이후 첫 본회의 개최일로부터 2일 이내에 상임위원의 선임을 국회의장에게 요청해야 한다. 또 제41조는 총선 이후 첫 본회의 개최일로부터 3일 이내에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야 협상단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진정한 개혁과 국회운영의 효율성을 위해선 충분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한다. 마치 개혁을 위해선 법과 규정을 무시해도 괜찮다는 소리로 들린다.

국회 사무처의 한 고위 관계자도 기자에게 “국회의 일 처리과정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국회법이 규정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며 왜 새삼 국회법 위반을 문제 삼느냐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지키지 못할 법이라면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하고, 지킬 필요가 없는 법이라면 없애는 게 맞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 마저자신들이 만든 법을 ‘당연한 것처럼’ 위반한다면 이는 국회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자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미 아닐까.

박민혁 정치부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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