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언행’의 원조 盧대통령…“튀지 말라” 初選들에 당부

  • 입력 2004년 5월 30일 18시 51분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와 중앙위원들을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하며 격려했다. 노 대통령이 만찬에 앞서 이미경 당선자와 축하 포옹을 하고 있다.-연합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와 중앙위원들을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하며 격려했다. 노 대통령이 만찬에 앞서 이미경 당선자와 축하 포옹을 하고 있다.-연합
“튀지 말고 할 말은 천천히 하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만찬에서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에게 ‘뼈있는’ 조언을 했다.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한 원론적인 내용이었지만 잇따른 튀는 발언과 행보를 보여 온 초선 의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당 일각에서는 ‘튀는 언행’의 원조격인 노 대통령이 거대 여당을 이끄는 관리자가 된 이후에 달라졌다는 평가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참석자들의 노래가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는 맺음말을 하는 순서에서 초선 의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한 충고를 시작했다.

그는 우선 “계속 당선이 됐다면 이해찬(李海瓚) 의원처럼 5선이 됐을 것”이라고 말문을 연 뒤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허삼수(許三守) 후보와 맞붙었던 당시를 회고하며 ‘할 말은 천천히 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노 대통령은 “당시 부산지역 당선자 모임에서 선배 정치인들에게 ‘허삼수씨가 강자인데 피했다’고 야유를 보낸 일이 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 같고 두고두고 후회한다”며 “1년 뒤에 삭여도 뼈가 남아 있을 말은 그때 가서 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할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튄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손해”라면서 “재치, 술수, 조급증 이런 것들만 잘 극복하면 중간 정도는 될 것이고 나아가 정직하고 용기 있게 솔직할 수 있다면 지도자의 꿈을 꿔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노 대통령은 “진실한 것 이상으로 더 훌륭한 전략은 없고 명분과 실리를 존중하되 둘 중 하나를 택하고 잘 모르겠으면 손해나는 쪽을 택하라”고 조언했다.

대통령의 충고에 대해 일부 의원은 “한마디 한마디가 정치를 막 시작하는 초선 의원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덕담이었다”고 평가했다. 일부는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거나 언론플레이를 하다가 망한 일부 의원을 빗댄 표현 같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말미에 “그동안 용기 있게 몸을 던지면서 저항하는 정치가 높은 점수를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대안과 창조의 정치, 생산성의 정치가 높은 평가를 받는 시대”라면서 운동권 출신의 초선 의원들을 겨냥했다. 그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예로 들면서 “투쟁적 용기보다는 역량이 평가받는 시대로 가고 있다”고 역설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바른말과 쓴소리는 꼭 필요하지만 그것은 보수정치의 시대, 언로가 막혀 있던 당 구조, 그 시절의 이야기”라면서 “비판적 이야기는 언제든지 내부에서 먼저 이야기하라”고 꼬집었다. 초선 의원들의 소신을 내세운 돌출적인 언행을 빗댄 듯했다.

이어 그는 “때로 의견이 다르면 따로 갈 수도 있지만 이런 때는 따로 해야 되는 근거가 무엇인지 잘 따져서 결단을 해야 할 때면 충분한 이유와 그에 따른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며 당의 단합과 결속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여러분 모두가 주의 깊게, 아주 사려 깊게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당부로 조언을 마쳤다.

한 참석자는 “말씀을 하시는 동안 여러 차례 박수가 터져 나왔고 시종 진지하고 숙연한 분위기였다”며 “초선 의원에 대한 경고라기보다는 돌출적이고 튀는 행동 자체가 끊임없이 견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대통령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였다”고 평가했다.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안영근의원 “깍두기 머리스타일로 왜 깎았나”▼

이날 청와대 만찬이 진행되던 도중 안영근(安泳根) 의원이 발언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참석자들은 바짝 긴장했다. 안 의원이 그동안 김혁규(金爀珪) 전 경남지사의 총리 지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온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

그러나 안 의원의 질문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안 의원은 노 대통령의 짧게 깎은 머리를 두고 “영화 ‘신라의 달밤’을 봤는데, 대통령의 머리가 그 영화에 나오는 ‘깍두기 머리’(배우 이성재의 짧게 깎아지른 머리)처럼 됐다. 깍두기로 바꾼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물었고,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즉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이 30일 기자들에게 “노 대통령이 탄핵 기각 결정이 난 14일에 머리를 짧게 깎았다”고 소개했다.

윤 대변인은 “다른 이유는 없고, 노 대통령의 머리카락이 원래부터 위로 뻗치는 스타일이어서 평소에 머리를 다듬는 데에만 15분이나 걸렸다”며 “머리 다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짧게 잘랐다고 노 대통령이 얼마 전 참모들에게 밝힌 적이 있다”고 전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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