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회담 시종 김정일 주도

  • 입력 2004년 5월 24일 23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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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끝냅시다.”

22일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로부터 식량지원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챙긴 뒤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섰다. 회담이 시작된 뒤 90분 정도 지난 무렵이었다. 당초 정상회담은 2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당황한 고이즈미 총리는 “잠시 기다려달라”며 납치 피해자 소가 히토미의 남편으로 일본행을 거부한 미국인 찰스 젠킨스의 귀국 문제와 피랍의혹자 10명의 처리 문제를 꺼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자리를 고쳐 앉으며 “그렇다면 젠킨스씨를 직접 만나는 게 어떻겠는가”라고 즉석 제안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젠킨스씨는 회담장 밖 별실에 대기 중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젠킨스씨의 일본행 설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어 고이즈미 총리는 피랍의혹자 10명의 처리를 의제로 올리려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난 것 아닌가. 추가 생존자는 없다”며 뭉개려 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그럴 리가 없다. (일본의) 가족도 나도, 살아있다고 믿고 있다”며 반박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알았다. (이전 조사 결과는) 백지상태로 돌린다. 한 차례 더 본격적인 조사를 하겠다”고 물러선 뒤 회담을 끝냈다.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야마자키 마사아키(山琦正昭) 일본 관방 부장관은 23일 NHK 대담에서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짧아진 데 대해 “상대편이 주도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일본 언론은 93분간의 북-일 정상회담의 주도권을 북한 김 위원장이 잡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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