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탄핵심판 憲裁결정문 全文 3

  • 입력 2004년 5월 14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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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민의 의사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정당과 후보자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기초로 하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형성과정에 개입하여 이를 왜곡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지난 수년 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하여 꾸준히 지속해 온 정당과 후보자의 정치적 활동의 의미를 반감시킴으로써 의회민주주의를 크게 훼손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국가에서 선거운동은, 정권을 획득하려는 다수의 정당과 후보자가 그 간의 정치적 활동과 업적을 강조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의 타당성을 설득함으로써 유권자의 표를 구하는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인데,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는 정당간의 자유경쟁관계는 대통령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편파적 개입에 의하여 크게 왜곡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 대통령의 발언은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반복하여 특정 정당에 대한 자신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나아가 국민들에게 직접 그 정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위와 같은 발언을 통하여 특정 정당과 일체감을 가지고 자신의 직위에 부여되는 정치적 비중과 영향력을 특정 정당에게 유리하게 사용한 것은, 국가기관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국민 모두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그의 과제와 부합하지 않는 방법으로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고, 이로써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위반하였다.

3) 선거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인정될 수 있는지의 판단은 또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이 행해진 시기에 따라 다르다. 선거와 시간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없는 시기에 위와 같은 내용의 발언이 행해진 경우에는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선거일이 가까워 올수록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욱 많으므로, 이러한 시기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편파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최대한으로 자제해야 한다는 국가기관의 의무가 있다.

전문 1  ▶전문 2  ▶전문 4

언제부터 국가기관의 편파적 행위가 선거에 특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시점을 명확하게 확정할 수는 없으나, 문제된 대통령의 발언이 행해진 시기는 각 2004. 2. 18., 2. 24.로서 2004. 4. 15.의 국회의원선거를 약 2달 남겨놓은 시점으로서, 이 때부터는 이미 사실상 선거운동의 준비작업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고 국가기관의 행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높다는 의미에서 선거의 인접성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이 기간에는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요청된다고 하겠다.

4) 그렇다면 선거에 임박한 시기이기 때문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어느 때보다도 요청되는 때에, 공정한 선거관리의 궁극적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대통령직의 정치적 비중과 영향력을 이용하여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로써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위반하였다.

(3)공선법 제60조(공무원의 선거운동금지) 위반여부

(가) 선거운동의 개념

공선법은 제58조 제1항에서 ‘선거운동’의 개념을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공선법은 같은 항 단서에서 ‘선거운동으로 보지 아니하는 행위’를 열거하고 있는데,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통상적인 정당활동이 이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의하면, 공선법 제58조 제1항의 ‘선거운동’이란, 특정 후보자의 당선 내지 이를 위한 득표에 필요한 모든 행위 또는 특정 후보자의 낙선에 필요한 모든 행위 중 당선 또는 낙선을 위한 것이라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 계획적 행위를 말한다(헌재 1994. 7. 29. 93헌가4등, 판례집 6-2, 15, 33; 헌재 2001. 8. 30. 2000헌마121등, 판례집 13-2, 263, 274).

선거운동인지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은 행위의 ‘목적성’이며, 그 외의 ‘능동성’이나 ‘계획성’ 등은 선거운동의 목적성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파악하는 데 기여하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행위자의 ‘목적의지’는 매우 주관적인 요소로서 그 자체로서 확인되기 어렵기 때문에, 행위의 ‘능동성’이나 ‘계획성’의 요소라는 상대적으로 ‘객관화될 수 있는 주관적 요소’를 통하여 행위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나)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의 여부

1) 공선법 제58조 제1항은 ‘당선’의 기준을 사용하여 ‘선거운동’의 개념을 정의함으로써, ‘후보자를 특정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선거운동의 요건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선거운동의 개념은 ‘특정한’ 또는 적어도 ‘특정될 수 있는’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행위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물론, 특정 정당의 득표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도 필연적으로 그 정당의 추천을 받은 지역구 후보자의 당선을 목표로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도 선거운동의 개념을 충족시킬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발언을 통하여 당선시키고자 하는 정당 후보자가 특정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발언이 이루어진 시기인 2004. 2. 18.과 2004. 2. 24.에는 아직 정당의 후보자가 결정되지 아니하였으므로, 후보자의 특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발언을 한 것은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2) 또한, 선거운동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목적으로 한다는 행위의 ‘목적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 사건 발언에 대해서는 그러한 목적의사가 인정될 수 없다.

가) 선거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의사형성과정에서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유권자는 누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방향을 표방하고 실현하고자 하는가를 알아야 하고,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정책 방향과 입후보자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유권자로서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기자회견 등을 통하여 유권자 결정의 판단기초가 되는 정보, 즉 정당과 후보자에 관한 정보의 제공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기자회견에서의 선거관련 발언을 모두 엄격하게 선거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치인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단기의 선거운동기간 중에만 선거운동을 허용하면서 그에 대해서도 선거운동의 주체 및 방법 등에 따른 다양한 규제를 가하고 있는 현행 공선법에서, ‘선거운동’의 개념을 너무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의 자유가 그만큼 더욱 위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기자회견 등에서의 발언이 그 자체로서 선거운동에 해당하거나 또는 반대로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행위의 태양, 즉 발언의 시기, 내용, 장소,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무엇보다도 ‘기자회견 등의 기회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하고자 하는 상당한 정도의 목적의지가 인정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발언의 능동성 및 계획성은 ‘목적의지’를 인식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나) 이 사건의 경우, 발언의 시기가 비록 임박한 2004. 4. 15.의 국회의원선거와 시간적인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나, 발언의 내용과 발언이 행해진 구체적 상황에 있어서, 여기서 문제되는 대통령의 발언들은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수동적이고 비계획적으로 행해진 점을 감안한다면, 대통령의 발언에 선거운동을 향한 능동적 요소와 계획적 요소를 인정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선거운동의 성격을 인정할 정도로 상당한 목적의지가 있다고 볼 수 없다.

3)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발언이 비록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국민에게 호소한 것에는 해당할지라도, 특정 후보자나 특정 가능한 후보자들을 당선 또는 낙선시킬 의도로 능동적·계획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부분 피청구인의 행

위는 공선법 제60조 제1항 또는 그 벌칙조항인 제255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4) 공선법 제85조 제1항, 제86조 제1항 위반 여부

공선법 제85조 제1항은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공무원이 그 소속직원이나 특정기관·업체 등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선거운동은 그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본바와 같이 피청구인의 위 발언들은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더 나아가 살필 것 없이 공선법 제85조 제1항에 위반되지 않는다.

공선법 제86조 제1항은 공무원의 여러 가지 선거관련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바, 먼저, 그 제1호는 소속직원 또는 선거구민에게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피청구인의 발언들에 열린우리당의 업적을 홍보하는 내용은 없으므로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제2호 내지 제7호는 구성요건 그 자체로서 피청구인의 발언들과 무관함이 분명하다. 따라서 공선법 제86조 제1항 위반도 인정되지 않는다.

나. 그 밖의 총선과 관련하여 발언한 행위

(1) 2003. 12. 19. 리멤버 1219 행사에서의 발언

대통령이 2003. 12. 19. 노사모 등 개혁네티즌연대가 주최한 ‘리멤버 1219’ 행사에 참석하여 “여러분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민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존경하는 우리 노사모 회원 여러분, 그리고 시민 여러분, 다시 한 번 나서달라.”고 발언한 사실이 인정된다.

위 발언은, 대통령이 대선 당시 자신을 지지하였던 노사모 등의 단체가 당선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하여 피청구인을 초청하여 축하행사를 하던 자리에서 행한 발언으로서, 문제된 발언의 내용을 연설 전체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행사의 참석자에게 선거개혁(‘돈 안 드는 공명선거’)이나 정치개혁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는 발언이거나 단지 ‘포괄적으로 자신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발언으로, 선거와 관련하여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거나 시민단체의 불법적 선거운동을 권유하는 발언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대통령의 위 발언은 허용되는 정치적 의견표명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서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위반되거나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고 할 수 없다. 또한, 그 외 다른 법위반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다.

다만, 대통령의 특정 시민단체에 대한 편파적 행동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의 집단과 그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집단으로 나라가 양분되는 현상을 초래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국가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와도 부합하지 않으며, 나아가 정부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2) 2003. 12. 24. 전직 비서관과의 청와대 오찬에서의 발언

대통령이 2003. 12. 24. 국회의원선거에 입후보하기 위하여 퇴임한 전직 비서관등 9명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내년 총선은 한나라당을 하나의 세력으로 하고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한 축으로 하는 구도로 가게 될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

대통령 부부가 9명의 전직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과 가진 청와대 오찬의 경우, 우선 모임의 성격이 대통령의 지위에서 가진 모임이라기보다는 사적인 모임의 성격이 짙고, 위 발언의 내용에 있어서도 대통령이 공직상 부여되는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위 발언은 발언의 상대방, 그 경위와 동기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정치적 의견표명의 자유를 행사한 것으로서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행위이며, 정치적 공무원에게 허용되는 정치적 활동의 한계를 넘지 않은 것이다.

(3) 2004. 1. 14. 연두기자회견에서의 발언

2004. 1. 14. 연두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개혁을 지지한 사람과 개혁이 불안해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갈라졌고, 대선 때 날 지지한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하고 있어 함께 하고 싶다.”고 발언한 사실이 인정된다.

위 발언은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입당시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법적으로 정당가입이 허용된 대통령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밝히고 그 정당에의 가입여부 및 그 시기에 관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대통령이 위 발언을 통하여 선거와 관련하여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이로써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 것이 아니므로, 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반하였거나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

(4) 2004. 2. 5. 강원지역 언론인 간담회에서의 발언

대통령이 2004. 2. 5. 강원지역 언론인 간담회에서 “국참 0415 같은 사람들의 정치참여를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허용하고 장려해 주어야 한다.”고 발언한 사실이 인정된다.

위 발언은 “당선운동을 표명하고 나선 국민참여 0415의 경우 불법 선거 개입의 논란 여지가 있는데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발언으로서, ‘선거문화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이 장려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정치참여가 법적으로 되도록 넓게 허용되어야 하며, 적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법적 해석을 관대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따라서 위의 발언은 단지 국민의 정치참여 현상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나 선거운동금지에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5) 2004. 2. 27.자 중앙일보에 보도된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전략 기획”

2004. 2. 27.자 중앙일보에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전략 기획”이라는 대외비 문건에 관하여 보도되었고, 이로써 청와대의 조직적 선거개입의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이 사건의 변론과정에서 드러난 모든 증거에 의하더라도 피청구인이 열린우리당의 선거전략을 지휘하거나 그에 관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이 부분 소추사유는 이유 없다.

(6) 국민을 협박하여 자유선거를 방해한 행위

이 부분 소추사유는 구체적 사실을 특정하지도 않은 채, ‘국민을 협박하여 특정 정당의 지지를 유도하고 총선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언행을 반복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선거를 방해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인바, 피청구인의 선거관련 발언들이 일반 공직사회에 파급효를 미쳐 공직자들의 선거중립적 태도에 실질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거나, 피청구인이 수장으로 있는 행정부 조직이 특정 정당을 위하여 선거에 개입하였다거나,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한 선거관리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였다고 볼 자료가 없고, 이로써 국민들의 선거에 관한 자유로운 의사형성을 저해·왜곡하였다거나 자유로운 투표권의 행사를 방해하였다고 볼 여지가 없다.

따라서 피청구인의 선거관련 발언들이 자유선거를 방해하였다거나 선거방해죄에 관한 규정인 공선법 제237조 제1항 제3호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다.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69조)와 관련하여 문제되는 행위

(1)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의무

헌법은 제66조 제2항에서 대통령에게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부과하고, 같은 조 제3항에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지우면서, 제69조에서 이에 상응하는 내용의 취임선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69조는 단순히 대통령의 취임선서의무만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3항에 규정된 대통령의 헌법적 책무를 구체화하고 강조하는 실체적 내용을 지닌 규정이다.

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69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는 헌법상 법치국가원리가 대통령의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구체화된 헌법적 표현이다. 헌법의 기본원칙인 법치국가원리의 본질적 요소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국가의 모든 작용은 ‘헌법’과 국민의 대표로써 구성된 의회의 ‘법률’에 의해야 한다는 것과 국가의 모든 권력행사는 행정에 대해서는 행정재판, 입법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의 형태로써 사법적 통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입법자는 헌법의 구속을 받고, 법을 집행하고 적용하는 행정부와 법원은 헌법과 법률의 구속을 받는다. 따라서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고 준수할 헌법적 의무를 지고 있다.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가 이미 법치국가원리에서 파생되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헌법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대통령의 막중한 지위를 감안하여 제66조 제2항 및 제69조에서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의 정신에 의한다면,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법을 준수하여 현행법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나아가 입법자의 객관적 의사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해야 한다. 행정부의 법존중 의무와 법집행 의무는 행정부가 위헌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법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위헌적인 법률을 법질서로부터 제거하는 권한은 헌법상 단지 헌법재판소에 부여되어 있으므로, 설사 행정부가 특정 법률에 대하여 위헌의 의심이 있다 하더라고,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법률의 위헌성이 확인될 때까지는 법을 존중하고 집행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위반 결정에 대한 대통령의 행위

(가) 2004. 3. 4. 노무현 대통령은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하여 자신의 선거개입을 경고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이 번 선관위의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이제 우리도 선진민주사회에 걸맞게 제도와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과거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동원하던 시절의 선거관련법은 이제 합리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선거법의 해석과 결정도 이러한 달라진 권력문화와 새로운 시대흐름에 맞게 맞춰져야 한다.”고 청와대의 입장을 밝힌 사실이 인정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결정에 대한 2004. 3. 4.자 청와대의 입장이 비록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집약된 의견이라고는 하나, 외부로 표명되는 모든 청와대의 입장은 원칙적으로 대통령의 행위로 귀속되어야 하고,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청와대비서실은 회의의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얻어 보좌관 브리핑을 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청와대 홍보수석의 위 발언은 곧 대통령 자신의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발표한 위 발언내용의 취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면서, 현행 선거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로 폄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대통령이 현행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로 폄하하고 법률의 합헌성과 정당성에 대하여 대통령의 지위에서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 할 의무와 부합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대하여 위헌의 의심이나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법률안을 국회로 환부하여 재의를 요구해야 하며(헌법 제53조 제2항), 대통령이 현행 법률의 합헌성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다면, 정부로 하여금 당해 법률의 위헌성여부를 검토케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합헌적인 내용의 법률개정안을 제출하도록 하거나 또는 국회의 지지를 얻어 합헌적으로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헌법 제52조) 등을 통하여 헌법을 실현해야 할 의무를 이행해야지, 국민 앞에서 법률의 유효성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이다. 물론, 대통령도 정치인으로서 현행 법률의 개선방향에 관한 입장과 소신을 피력할 수는 있으나,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연관관계에서 법률의 개정에 관하여 논의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대통령이 선거법위반행위로 말미암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 외국의 입법례를 들어가며 현행 선거법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법률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공직자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대통령의 이러한 언행은 법률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하는 다른 공직자의 의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국민 전반의 준법정신을 저해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등 법치국가의 실현에 있어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법치국가에 대한 대통령의 불투명한 태도 또는 유보적 입장이 국가 전반 및 헌법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 대통령 스스로가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지 않는다면, 다른 공직자는 물론, 국민 누구에게도 법의 준수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현행법의 정당성과 규범력을 문제 삼는 행위는 법치국가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자,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3) 2003. 10. 13.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행위

국회의 소추의결서는 세 번째 소추사유인 ‘불성실한 직무수행과 경솔한 국정운영’과 관련하여 ‘위헌적인 재신임 국민투표의 제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청구인이 탄핵심판을 청구한 후 제출한 의견서를 통하여 이를 구체화하였으므로, 판단의 대상으로 삼기로 한다.

(가) 대통령이 2003. 10. 13. 국회에서 행한 ‘200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저는 지난주에 국민의 재신임을 받겠다는 선언을 했다.…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국민투표가 옳다고 생각한다. 법리상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현행법으로도 ‘국가안보에 관한 사항’을 좀더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발언하여, 같은 해 12월 중 재신임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로 인하여 재신임 국민투표의 헌법적 허용여부에 관한 논란이 야기되었다. 결국, 신임 국민투표의 위헌성에 관한 다툼은 헌법소원의 제기로 인하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게 되었으나, 헌법재판소가 헌재 2003. 11. 27. 2003헌마694 등 결정에서 5인의 다수의견으로 ‘심판의 대상이 된 대통령의 행위가 법적인 효력이 있는 행위가 아니라 단순한 정치적 계획의 표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판청구를 부적법한 것으로서 각하하였다.

(나)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여 대통령에게 국민투표 부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에게 국민투표의 실시 여부, 시기, 구체적 부의사항, 설문내용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임의적인 국민투표발의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함으로써, 대통령이 단순히 특정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정책에 대한 추가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거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등, 국민투표를 정치적 무기화하고 정치적으로 남용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대통령의 부의권을 부여하는 헌법 제72조는 가능하면 대통령에 의한 국민투표의 정치적 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엄격하고 축소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의 대상인 ‘중요정책’에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임’이 포함되지 않는다.

선거는 ‘인물에 대한 결정’ 즉, 대의제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국민의 대표자에 관한 결정이며, 이에 대하여 국민투표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안에 대한 결정’ 즉, 특정한 국가정책이나 법안을 그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국민투표의 본질상 ‘대표자에 대한 신임’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우리 헌법에서 대표자의 선출과 그에 대한 신임은 단지 선거의 형태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대통령이 이미 지난 선거를 통하여 획득한 자신에 대한 신임을 국민투표의 형식으로 재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제를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위헌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헌법상 국민에게 자신에 대한 신임을 국민투표의 형식으로 물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정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이면서 이에 자신의 신임을 결부시키는 대통령의 행위도 위헌적인 행위로서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이 특정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인 결과 그 정책의 실시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경우, 이를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여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이면서 “이를 신임투표로 간주하고자 한다.”는 선언은 국민의 결정행위에 부당한 압력을 가하고 국민투표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묻는 행위로서,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민투표를 통하여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신의 신임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라) 뿐만 아니라, 헌법은 명시적으로 규정된 국민투표 외에 다른 형태의 재신임 국민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이 원하거나 또는 국민의 이름으로 실시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은 선거와 국민투표를 통하여 국가권력을 직접 행사하게 되며, 국민투표는 국민에 의한 국가권력의 행사방법의 하나로서 명시적인 헌법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국민투표의 가능성은 국민주권주의나 민주주의원칙과 같은 일반적인 헌법원칙에 근거하여 인정될 수 없으며,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지 않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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