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추가파병]아르빌 태도 모호…연기 불가피

  • 입력 2004년 5월 9일 18시 46분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에 대한 국제적 비판 여론이 고조되면서 이라크 파병에 대한 찬반 논쟁이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또다시 가열되고 있다. 파병지를 변경하면서 정부의 실무적인 파병 준비도 늦어지는 분위기다.

▽늦어지는 파병 일정=정부는 새 파병지 후보를 둘러보기 위한 이라크 현지조사단이 4월 19일 귀국한 직후인 20일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아르빌이 새 파병지로 적당하다’는 조사단의 공식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새 파병지를 최종 결정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4월 22일과 29일, 그리고 이달 6일 세 차례나 파병지 결정을 연기했다.

파병지 결정 연기의 이유는 아르빌 자치정부가 △한국군 파병에 대한 공식 환영 발표 △한국군의 아르빌 공항 이용 범위 △아르빌 공항 내 한국군 주둔 허용 등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나타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국방부측의 설명이다.

특히 아르빌 공항의 경우 활주로가 매우 비좁아 50인승 소형 항공기만 이용할 수 있으며 대형 항공기의 이착륙을 위한 관제시설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아르빌 정부가 공항을 국제공항 수준으로 개발하기 위해 최근 터키 민간기업과 계약을 체결해 공항 내 대규모 한국군의 주둔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방부 해외파병과 관계자는 “우리 군의 안전하고 성공적인 파병활동을 위해서는 이 같은 부분들이 명확히 정리돼야 한다”며 “아르빌 정부의 명확한 뜻이 공식 전달되면 파병은 당초 원칙과 계획에 따라 신속히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방부가 6월 중순으로 수정한 파병 일정마저도 7월 중순까지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 논란 가열=최근 미군과 영국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은 정부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다.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이라크 반군들의 테러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늘고 있고 파병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의 압력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파병 재검토’를 공식 제기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천정배 의원과 이해찬 의원도 각각 “전면 재검토는 어렵지만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거나 “정부와의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며 파병 신중론을 개진하고 있다.

이미 당론으로 파병 철회를 결정한 민주노동당은 개원 직후 아예 파병철회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날 민노당 소속 당선자들은 광주 국립5·18묘지 참배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가 개원하면 파병을 철회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안전 문제와 포로 학대 문제 등으로 파병 명분이 퇴색하고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만큼 파병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방부는 정치권의 파병 재검토 요구에 대해 3700여명의 파병 규모를 변경하거나 12월 31일까지로 돼 있는 파병 기간을 연장하지 않을 경우 동맹관계의 신뢰에 손상이 갈 수밖에 없다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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