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기자가 본 한국총선]지역주의 병폐 사라질지 관심

  • 입력 2004년 4월 14일 18시 53분


한국정치는 지금 커다란 전환점에 서 있고, 계속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나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한국정치의 오랜 병폐로 지적돼 온 지역대립구도가 변화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탄생 배경에는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탈 지역정당 모색이라는 요인도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가결 이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상승은 정도의 차는 있었지만 전지역 전연령층 전계층에서 나타났다.

물론 여기에는 국정 혼란을 피하고 싶다는 안정지향적 의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주의를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대가 분명히 강했다고 본다. 그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뿌리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지난주 광주를 방문했을 때 만난 택시운전사(44)는 이렇게 말했다. “DJ계승이라는 차원에서 대선 때 노무현(盧武鉉)씨를 지지했다. 그런데 개혁을 기대하고 있는 데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손잡고 대통령을 끌어내리려고 했다. 민주당에 배반당했다는 느낌이다.”

그의 말에서 보듯 호남 및 수도권의 호남 출신 유권자들 사이에서 한-민 공조에 대한 저항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열린우리당 지지로 호남 민심의 일시 결집현상이 나타난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투표일이 가까워 옴에 따라 예를 들어 “경상도는 역시 한나라당”이라는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결국 지금의 상황을 탄핵풍에서 지역풍으로 변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인지 다소 혼란스럽다.

여기에다 돌연한 탄핵정국,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실언(失言), 뒤이은 선대위원장직과 비례대표후보 사퇴, 단식 삭발, 눈물작전 같은 종래의 깜짝쇼, 쇼크요법 등 ‘감성의 호소 정치’가 되풀이되고 있다. ‘탄핵반대인가 찬성인가’, 친노인가 반노인가’, ‘새로운 정치인가 낡은 정치인가’ 등 무엇이 정의인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단순 분화가 강제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민적 논의와 선택의 폭을 좁게 할 뿐, 대립의 해소나 화해추구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한국은 3김 시대의 냉전형 대립 구도에서 새로운 보수와 진보라고 하는 축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있다. 이는 대폭적인 세대교체와 ‘시민사회’의 등장, 정보기술(IT)의 발달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 정치 불신, 답답한 사회를 변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국민적 열망이 포함돼 있다. 그런 점에서 커다란 모멘텀에 이제 역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역색도 결국은 엷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스게 고이치(小菅幸一·아사히신문 논설위원)

정리〓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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