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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3월 15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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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대결이 중앙당싸움으로’=민주당 간판으로 강원 춘천에 출사표를 던졌던 이용범(李龍範)씨는 “탄핵 정국에 지역정치가 실종되고 있다”며 후보직 사퇴 결심을 굳혔다. 이 후보가 사퇴한다면 탄핵 사태 후 처음이다. 이씨는 “춘천의 먹고 사는 문제, 춘천의 인물을 키우는 문제 등 지역정치 현안을 갖고 선거를 치르려 했는데 탄핵 정국 이후 중앙 정치의 볼모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면서 “후보직 사퇴와 총선 불출마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계양을의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정창교(鄭彰敎)씨도 마찬가지. 그는 “탄핵이냐 아니냐 하는 얘기만 있고 후보 개인은 실종됐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어떻게 치르느냐. 극단적으로 선거를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민노당 등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출마예정자들도 시름에 젖어 있다. 경북 영주에서 무소속 출마를 준비 중인 한 후보는 “지금 상황은 ‘친노(親盧) 대 반노(反盧)’, ‘여당 대 야당’이라는 이분법 구도로 진행되고 있어 무소속 후보가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숨을 쉬었다.
▽희비 엇갈리는 여야후보=한나라당 출신으로 부산 연제에 출마한 김희정(金姬廷·여) 후보는 탄핵의결 직후 유권자들로부터 “인물은 좋은데 한나라당이라 아쉽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김 후보는 “한나라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그런 얘기를 들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민주당 후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경기 안산구 단원갑에 출사표를 던진 민영삼(閔泳三)씨는 탄핵안 가결 다음날인 13일 지역구에서 열린 바자회 행사장에서 주민들에게 명함을 내밀었다가 명함을 박박 찢기는 수모를 당했다.
인천 계양갑에 나서는 한나라당 김해수(金海修) 후보는 14일 오전 조기축구회 모임에 갔다가 “한나라당은 보기도 싫다”는 회원들의 반발에 부닥쳐 발길을 돌렸고, 이날 밤 한 상가(喪家)에서도 “한나라당은 당장 나가라”는 상주의 요청에 무안을 당해야했다.
서울 강북을의 한나라당 안홍렬(安洪烈) 후보는 “심지어 주민들에게 명함을 건네도 한나라당 명함이라며 안받으려는 사람도 있다”며 “탄핵 때문에 한나라당 후보들이 도매금으로 억울하게 넘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주 완산을 선거구에 민주당 공천을 신청한 김현종(金鉉宗) 후보는 “탄핵안 가결 이후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민주당을 탈당하라’는 압력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야당 후보들의 경우 아예 지역을 돌지 않고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활동에 주력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민주당 인천시지부는 15일 오후로 예정된 필승결의대회에 앞서 이례적으로 총선공약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후보들에게는 지지전화와 격려가 쏟아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광명을 양기대(梁基大) 후보는 “탄핵안 의결이후 하루에 50∼70여통씩 격려전화가 쇄도하고 있다”며 “이들 중에는 자원봉사자를 자청하거나, 당원으로 가입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백태=민주당 서울 강서을 김철근(金哲根) 후보는 탄핵정국 이후 거리를 도는 대신 지역구내 ‘주부 노래교실’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김 후보는 노래교실에 들러 ‘꽃바람 여인’ ‘있을 때 잘해’ 등 주부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열창, 주부들로부터 ‘얼짱’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탄핵 등 복잡한 정치현안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정서적인 접근에 대해선 반응이 좋다는 것.
경기 구리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윤호중(尹昊重) 후보는 폭설이 내린 5일 지역구내 초등학교를 돌며 눈을 쓸었고, 20일엔 국도변 버스정류장에서 ‘물갈이 대청소’를 개최키로 했다.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측은 탄핵의결로 기성정치인보다 신인들의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신인 공천자들에게 “당분간 활동을 자제하되 당원의 이탈을 막고 내부적 힘을 축적하라”고 지시했다. “소나기 내릴 때는 피해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
반면 한나라당 청주 상당선거구에 출마예정인 윤의권(尹義勸) 후보는 “어차피 지금 정국은 출렁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렇다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처음 페이스를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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