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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2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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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위해 허용' 현제도 문제많아 ▼
과학 연구의 보람은 불확실한 현상이나 사실을 제거하면서 현실세계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게 됐을 때 느낄 수 있다. 법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법규정의 제정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확실성의 척도를 가지려는 시도를 해 왔다. 법규정을 제정하는 데에는 경험에 근거한 과거 사실 못지않게 미리 설정된 국가목적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법규정의 내용 중에서 ‘국가안전보장’만큼 우리를 오랫동안 짓눌러 온 주제도 많지 않다. 남북 분단 상태에서 국가 안위를 책임져야 하는 정부로서는 국가안보에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했고, 이에 기초한 책임정치를 실현해야 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판단기준이 외부에 열려 있지 않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정보기관이나 특정 부서의 일방적 판단이 국가안전보장의 내용을 채웠다. 왜곡된 국가안보 논리는 때로 특정인의 고문이나 사망을 초래하기도 했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도구로 작용했으며, 학자의 양심을 침해하거나 언론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민주화가 진전된 지금 국가안보의 기준이 사회의 여러 세력에 의해 검증되고 어느 정도 열린 기준에 의해 비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아직도 사각지대는 남아있는 것 같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외교통상부 출입기자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조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안보의 의미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정부 내 외교정책 갈등’에 대한 언론보도와 관련해 보안유출이 있었는지 여부를 알아봐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국정원이 통화기록을 조회했다는 당국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형식적인 위법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정보기관이 ‘국가안보에 대한 위해방지’를 위해 기관장의 내부결재만으로 통신회사에 통화기록 조회를 요청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국가안보에 대한 위해방지’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이 내부기관장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너무도 쉽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직도 닫혀 있는 국가안보의 논리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특히 그 행위가 정보화 사회의 필수적인 생존여건인 휴대전화 사용의 통화기록 조회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통화가 언론사의 자유로운 취재활동의 전제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결과론이지만 이번 사건에서 ‘국가안보’와 관련된 내용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국가안보를 내세운 정보기관의 일방적 판단에 의해 사생활도, 언론자유도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만을 야기했을 뿐이다.
▼정부기관의 일방적 판단 막아야 ▼
이는 국가안보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요구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기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판단기준이 지금보다 더 열려 있어야 한다. 정부기관의 일방적 잣대에 의해 우리의 생존적 전제여건이 결정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다.
‘국가안보’는 열린 기준에 의해 판단될 때에만 국민적 동의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통화기록 열람시 법원의 영장제 도입이나 법원 승인 등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든 정부가 일방적으로 국가안보를 판단하는 현재의 논리체제는 청산돼야 한다.
류지태 고려대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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