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한반도정책]<3>대북정책 누가 어떻게 결정하나

  • 입력 2004년 1월 4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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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이후, 특히 북한이 농축우라늄(HEU) 핵 개발을 시인한 이후 대북정책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안 중 하나다. 미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만난 미 행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시각이 9·11 이전과는 현격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직접 대북정책을 챙기면서 ‘체니 변수’(Cheney Factor·딕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와 다르다=눈에 띄는 변화는 한반도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결론이 실무책임자나 외교관 채널이 아닌 최고위급 각료들이 참석하는 회의에 가서야 나온다는 점이다. 실무진의 권고안이 상당부분 반영되곤 했던 클린턴 행정부 때와는 다른 변화다.

워싱턴의 행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한국과 달리) 북한이 해외에 대량살상무기(WMD) 또는 기술을 수출할 가능성을 염려한다. 그것은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클린턴 행정부 때와 또 다른 변화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싱크탱크나 학계 인사들의 참여가 줄었다는 점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싱크탱크나 학계의 논문 및 정책제안서를 긴 시간을 할애해 다각도로 비교 분석하곤 했다. 헤리티지 재단의 발비나 황 연구원은 “마치 세미나를 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특히 미 외교협회(CFR) 보고서는 대북정책 기조에 그대로 반영되곤 했다. 한국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당시 CFR가 대북정책 제안보고서를 내기 위해 한국에 조사팀을 파견해 정부 당국자와 학계 인사들을 만나고 가면 대략 어떤 기조의 정책 제안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다”며 “우리 정부에 미리 초안을 보내주고 조언을 구할 만큼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고 전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교수는 “요즘은 ‘오프 더 레코드(비공개)’를 전제로 행정부 관리들을 만나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홍보책자에 나와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며 “부시 행정부는 현안에 대해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입을 굳게 다물기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최고위급 각료회의에 가서야 결론이 내려지는 또 다른 이유는 미 행정부 내 분열 때문이기도 하다. 행정부 당국자는 “현안에 직접 관련돼 있지 않으면 내용을 알기 어렵다”며 “그만큼 비밀은 잘 지켜지지만 포괄적인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고위층까지 올라가기 전 실무자 차원에서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고, 분열상이 노출된다는 뜻이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4월 베이징(北京) 3자회담과 8월의 제1차 6자회담.

3자회담이 열리기 직전 대표적 강경파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백악관 고위 참모들에게 세 차례나 편지를 보냈다. 특히 세 번째 편지에서는 “미국 대표단장을 (온건파인 제임스 켈리에서) 존 볼턴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이나 로버트 조지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 담당관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볼턴 차관은 ‘국무부 내 럼즈펠드 라인’으로 알려진 강경파.

대표단장이 바뀌진 않았지만 켈리 차관보는 북한과 직접 대화하지 말라는 백악관의 엄중한 지시를 받았다. 그 결과 회담장에서 켈리 차관보는 북한의 질문에 “내 원고를 읽어보라”는 식의 앵무새 답변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

3개월여 뒤인 12월 7일 워싱턴 포스트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보도했다. “국방부와 백악관 NSC 인사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켈리 차관보는 더 이상 말을 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행정부 내 분열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면서 “논쟁의 결말이 나지 않기 때문에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체니 변수=국무부 고위관리를 지낸 워싱턴의 한 관계자는 “부시 행정부의 특징은 ‘체니 변수’라고 할 수 있다”며 “온건 강경파가 대립할 때마다 강경파에 힘을 실어주는 결정적 인물이 바로 체니 부통령”이라고 말했다.

외교정책에 대한 국무부와 국방부의 의견 대립은 미 행정부의 ‘전통적 갈등’이지만 강경파인 국방부쪽에 힘을 실어 주는 결정적 역할은 체니 부통령이 해 왔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부시 대통령의 결심에 앞서 최종 조정역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맡는다. 한 행정부 당국자는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보좌관에게 각기 다른 의견을 종합해 보고하도록 지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라이스 보좌관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라이스 보좌관은 NSC 회의 때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만 하지만 대통령에게 회의결과를 종합 보고할 때는 자신의 ‘검토의견’을 첨부한다고 한다.

앨린 롬버그 스팀슨연구소 연구원은 “NSC에서 일했던 경험에 비춰볼 때 ‘국무부와 국방부가 각각 다른 의견을 내놓았는데 NSC는 이렇게 본다’라는 논지로 올라오는 NSC 메모처럼 대통령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사석에서 “나는 신문은 안 읽는다”며 “선입견 없는 콘디(콘돌리자의 애칭)가 바로 내 정보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라이스 보좌관을 신임한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워싱턴 관계자는 “라이스 보좌관은 부시 대통령과의 대화법에 정통하다”며 “대통령이 무엇을 불편하게 느끼고 어떻게 말하는 것이 대통령에게 가장 편하면서도 영향력 있게 접근하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은 없지만 행정부 내 한반도 정세에 정통한 ‘전문가’로는 국방부의 리처드 롤리스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거론된다. 부인이 한국계인 데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한국에서 오래 근무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국무부에서는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한국담당 과장이 단연 ‘한국통’.

백악관 NSC에서는 일본과 한반도 문제를 전담하다 최근 아시아 전체를 관장하는 NSC 아태담당 선임보좌관으로 승진 내정된 마이클 그린, 아태담당 보좌관으로 승진할 예정인 처크 존스, 밥 조지프 비확산담당 선임보좌관, 윌리엄 토비 비확산담당보좌관이 실질적인 ‘한반도담당’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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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백악관이 밝히는 현재의 전략▼

“당사국들이 함께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는 6자회담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워싱턴 집무실에서 만난 백악관 당국자는 “북한과 공식적인 양자회담에 임할 때 미국이 갖는 ‘지렛대(leverage·정책수단)’는 군사조치밖에 없다. 좋은 옵션이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매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대북 정책의 원칙을 설명해 달라.

“상황이 바뀌었지만 근본 전략이 바뀐 것은 아니다. 과거 미국은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북-미 양자회담은 잘 되지 않았다. 북미간 기본합의문(Agreed Framework)은 지켜지지 않았다. 양자회담만 한다면 미국의 지렛대는 군사조치다. 이는 좋은 옵션은 아니다.”

―최종목표와 대북 인센티브는 무엇인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다. 북한이 이를 실행하면 북한의 우려를 해소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대북 안전보장은 협상과정의 조기 시점에서도 가능하다. 에너지 원조는 조금 뒤, 진전이 보이면 할 수 있다. 미국을 포함한 관련국들과의 외교관계 수립, 평화협정 체결 등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북핵이라는 문이 먼저 열려야만 한다.”

―일부에서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미 정부의 입장은….

“지금까지 북한은 핵과 함께 다른 좋은 것들, 예컨대 한국과의 관계개선, 중국의 원조, 미국과의 외교정상화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6자회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미국 혼자만 나서서 북한에 양자택일을 강요할 수 없다. 관련국 모두가 함께 시도해 보기 전에는 결과를 알 수 없다. 만일 북한이 이를 거부하고 핵개발을 계속하면 우리는 ‘다른 옵션’들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거기까지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

워싱턴=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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