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희망돼지’ 눈 가리고 아웅 하나

  • 입력 2003년 11월 24일 18시 55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엊그제 광주를 시작으로 ‘희망돼지 투어’에 들어갔다. 다음달 7일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대도시를 순회하면서 일반인들에게 돼지저금통을 나눠주고 이 저금통에 돈을 담아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전달토록 한다는 것이다. 노사모는 ‘희망돼지 투어’가 국민의 정치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정치자금 모금 방식을 거액 소수에서 소액 다수로 바꿈으로써 깨끗한 정치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희망돼지 운동’은 이미 1심 재판에서 대부분 사전선거운동, 불법기부행위 등으로 선거법 위반 판결이 내려졌다. 이 운동을 주도한 인사도 부산지법에서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런데도 운동을 강행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노사모가 이를 의식해 이번에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명시하지 않은 채 돼지저금통을 나눠주고, 돈이 든 저금통도 각자가 후보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방법을 바꿨다고는 해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노사모가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 유권자들이 모를 리 없다. 결국 합법이란 이름 아래 특정 정당 후보 당선운동을 벌이겠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단속 방침도 납득하기 어렵다. 선관위는 “특정 후보의 당선을 이롭게 하는 방법으로 돼지저금통을 배부할 경우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되지만 행사 자체를 위법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했다. 한마디로 돼지저금통에 지지 후보의 이름이나 구호 등을 쓰지 않고, 특별한 의식(儀式) 없이 그냥 나눠주면 괜찮다는 것인데 이래서야 효과적인 단속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희망돼지 저금통’에 희망 대신 코드를 담을 생각이 아니라면 ‘희망돼지 운동’은 중단돼야 옳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 국정보다는 총선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야당의 공세가 거세다. 이러한 때에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가 돼지저금통을 들고 전국을 누빈다면 국민이 과연 고운 눈으로 바라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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