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비서실장의 ‘어찌하오리까’

  • 입력 2003년 11월 20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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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한 판의 소극(笑劇)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돌출 발언을 놓고 한나라당이 ‘사설(私設) 부통령’이라고 몰아붙인 것은 그렇다 치자. 문제는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의 답변이다.

문 실장은 ‘강씨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예전엔 비서실장이 대단한 권력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지금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발을 할까요, 대통령 말씀 듣는 사람이라면 벌써 들었을 것입니다…”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 수석도 “허 참 답답합니다. 우리도 곤혹스럽습니다…”라며 난감해 했다.

강씨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가. 노 대통령과 어떤 관계이기에 그를 제지하지 못하는가. 이러니 ‘정권 말기에 등장하던 소통령(小統領)이 벌써 나왔다’ 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다.

강씨의 막말은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다. ‘나는 정권 내 제1야당 총재’ ‘이번 개편 때 문재인 민정수석도 갈릴 것’ ‘대선 때 노 후보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도와줬다’고 하더니 급기야는 ‘내가 입을 열면 여러 사람이 불편해진다’고 했다. 역대 어느 정권의 측근이나 가신도 이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한 후원관계로만 보지 않으려는 시각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일개 중소기업인이 국정 안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처럼, 대통령의 인사 방향까지도 아는 것처럼 떠들고 다녀서는 곤란하다. 강씨는 자제해야 한다. 이런 식의 언행은 대통령을 진정으로 도와주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검찰에서 해야 한다.

노 대통령도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강씨와의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나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적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강씨 한 사람으로 인해 대통령이 희화화(戱畵化)되고 정권의 권위와 기강이 무너져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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