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기자간담회]검찰수사에 힘실어 '정치권 물갈이'

  • 입력 2003년 11월 2일 18시 30분


노무현 대통령은 2일 청와대 춘추관을 방문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노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통해 지난해 대선과 관련된 정치자금의 전모를 밝힐 것을 주장했다. -박경모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일 청와대 춘추관을 방문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노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통해 지난해 대선과 관련된 정치자금의 전모를 밝힐 것을 주장했다. -박경모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일 지난해 대선자금에 대한 전면 수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대선자금 수사의 이해관계자인 검찰, 정치권, 재계 등 3자를 향해 동시에 보낸 메시지로 보인다.

특히 SK 외에 다른 기업으로까지 수사를 확대할지를 놓고 저울질을 거듭하고 있는 검찰을 향해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특검 제안을 일축하면서 ‘거리낌 없는 수사’를 요구했다. 검찰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힌 셈이다. 또 정치권에 대해서는 중앙당 장부와 지구당 장부를 포함해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져 왔던 정당 자금에 대한 조사를 감수하더라도 검찰 수사에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동시에 대선자금 수사 확대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재계에 대해서는 “대가성 있는 뇌물이 아닌 한 사면을 제안할 용의도 있다”며 안심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선(先) 정당 장부 조사, 후(後) 기업 실무자의 확인조사’라는 방법론까지 제시한 것은 기업의 최고경영인을 줄줄이 소환조사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최근 청와대측은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이탈리아 검찰이 1992년부터 3년간 벌였던 ‘마니폴리테(깨끗한 손)’식의 전면적인 부패척결 방식을 상정해 왔다. 그러나 ‘마니폴리테’는 당시 이탈리아 공공부문의 경제활동을 완전히 마비시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런 맥락에서 노 대통령의 제안은 기업을 정치자금의 ‘피해자’로 규정해 사면권을 발동하겠다는, 다소 변형된 형태의 ‘한국식 마니폴리테’를 제안한 것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이 검찰 전면수사라는 해법을 내놓은 배경에는 내년 4월 총선에서 고비용 불법 정치자금 관행에 젖어있는 기존 정치권의 물갈이를 유도하겠다는 의도도 담겨있는 듯하다.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히고 나면 정당이나 정치인이 어떤 태도로 선거운동을 했는지 어느 정도 구분이 될 수 있다. 잘못된 정치풍토에 대해 저항하면서 정치를 해온 사람, 마구 돈을 긁어모으고 썼던 조직이 구별될 수 있다. 여기에서 국민이 뭔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이다”고 말한 것은 이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검찰이 대선자금 전면 수사에 나설 경우 내년 총선을 앞둔 각 당의 공천 과정에서 새 바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청와대는 지난달 26일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와의 회동에 앞서 물밑접촉을 통해 ‘대선자금 전면 수사’라는 해법에 어느 정도 의견일치를 봤으나 한나라당이 SK비자금 100억원 불법수수 사실이 밝혀진 뒤 전면 특검 쪽으로 선회함으로써 최종 합의를 보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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