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국민투표'논란]野 ‘탄핵 카드’ 역공…벼랑끝 政局

  • 입력 2003년 10월 14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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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운데)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기에 앞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최 대표에게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사퇴한다’는 내용을 연설에 포함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영수기자
14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운데)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기에 앞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최 대표에게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사퇴한다’는 내용을 연설에 포함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영수기자
재신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1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와 대통령 탄핵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대치 전선의 초점을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등 대통령 측근 비리에 맞추려는 속내가 분명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주도하는 재신임 정국에 마냥 휩쓸리지만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정국 주도권 회복 노림수?=최 대표는 이날 대표 연설에서 노 대통령이 던진 재신임 카드를 ‘조건부 수용’했다.

다만 최 대표는 재신임 국민투표에 앞서 최도술씨 등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이 10일 기자회견에서 재신임을 묻는 이유로 ‘최도술씨 비리와 축적된 국민 불신’이라고 한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이 같은 최 대표의 발언은 재신임 정국의 주도권 다툼과 직결돼 있다. 노 대통령의 ‘국민투표 속공(速攻)’에 발이 묶인 최 대표로선 새로운 전단(戰端)을 대통령 측근 비리에서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특히 최 대표가 “측근 비리에 노 대통령이 연관돼 있다면 재신임이 아니라 탄핵대상”이라며 탄핵카드를 꺼내든 배경엔 재신임의 화두를 ‘정치개혁’으로 몰고 갔던 노 대통령에 대한 반격을 통해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국민투표 발의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면 탄핵안 발의는 국회의 몫이라는 점에서 ‘탄핵정국’은 과반 의석을 가진 원내 1당이 주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 탄핵안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된다.

▽탄핵안 과연 낼까=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키는 탄핵 카드의 ‘폭발력’을 감안할 때 한나라당은 이 카드를 쉽게 꺼내들 것 같지는 않다. 최 대표가 이날 연설 후 기자간담회에서 “(탄핵 카드는) 일단 주머니에 들어 있으니까 좀 더 지켜보자”며 “일단 검찰 수사 과정을 지켜보자”고 말한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

따라서 당분간 탄핵 카드는 최도술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압박하는 보조수단이 될 공산이 크다.

최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탄핵 카드는 다양한 공세를 펼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향후 한나라당의 측근 비리 공세가 어떤 방향으로 번지느냐에 따라 탄핵 정국이 ‘실제화’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앞으로 치열해질 청와대와의 공방전도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치정국 가속화될 듯=강경대응으로 가닥을 잡은 한나라당은 당분간 노 대통령 주변을 겨냥한 파상적인 공세에 나설 공산이 크다.

최 대표가 이날 대표 연설에서 “우리는 (노 대통령에 관련된) 장수천 빚 청산을 포함한 여러 가지 비리관련 얘기들을 듣고 있다”고 노 대통령에 대한 압박공세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벌써부터 당내에선 최 전 비서관 등 노 대통령 측근들을 겨냥한 ‘실탄’이 상당수 확보됐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한 핵심당직자는 “최 전 비서관의 수뢰액이 당초 알려진 액수보다 엄청나다는 물증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나라당의 공세는 청와대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 만큼 향후 정국은 불가피하게 급랭할 조짐이다.

이 때문에 결국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3당의 대치국면 속에 ‘재신임 국민투표’의 연내 실시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갈수록 짙어가고 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청와대 “野요구 들어주니 엉뚱한 얘기만”▼

청와대는 14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을 ‘정치적인 술수’라고 규정한데 대해 “야당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니까 이제 와서 국민투표를 거부할 구실을 찾고 있는 것 아니냐”며 맹렬히 비난했다.

이병완(李炳浣)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최 대표의 연설 직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노 대통령의 측근 비리의혹과 국정 혼란을 지적한 최 대표의 연설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 수석은 특히 SK 비자금 100억원 수수의혹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 사건을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최 의원이 ‘혼자 죽지 않겠다’며 당을 협박했다는 보도도 있는 데 그 당의 대표가 정권비리를 성토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대담해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이어 “노 대통령은 어제 시정연설에서 국정 혼란과 측근비리에 대해 ‘모두 내 탓’이라며 대통령직을 걸고 재신임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원내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는 제 1당 대표가 세상 모든 것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것을 보면 5, 6공 때의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짙은 동경이나 향수에 젖어있는 것 아니냐”고 공격했다.

이 수석은 또 “최 대표가 대검 중수부장에 대해 ‘최고 실세’라고 격찬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 와서 검찰 수사를 못 믿겠다며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재신임을 처음 선언했을 때 ‘국민투표밖에 없지 않느냐’고 해놓고 이제 와서 국민투표는 안 된다고 말하니 진의가 무엇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특히 최 대표가 ‘측근비리 연루 때 대통령 탄핵’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 “가치 없는 것에 대해선 오늘 아무 말도 안 하겠다”며 피해 나갔다.

다른 한 고위 관계자는 “한나라당에서 국민투표 하자고 해서 국민투표 했고 빨리 하자고 해서 조기에 실시하기로 결정했더니 이제 와서는 위헌이니, 특검이니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결단은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정략적 판단에 의한 게 아니라 대통령직을 걸고 내린 순수한 결단”이라며 “이를 폄하하는 것 자체가 정략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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