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盧대통령 “송두율씨 포용 필요” 언급에 당혹

  • 입력 2003년 10월 13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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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SK비자금 수사에서 드러난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의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 ‘재신임’ 발언을 한 데 이어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독 학자 송두율(宋斗律)씨 사건에 대해 직접 언급, 앞으로 검찰 수사와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SK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과 수사팀은 이날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면서도 외부 상황에 의해 검찰조직이 흔들리거나 수사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경계했다.

특히 송씨 사건 조사와 관련해 검찰은 대통령의 발언과 상관없이 ‘원칙대로’ 수사에만 전념한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검사들은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의 수사 관여”라며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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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부 및 수사팀 반응=송 총장이 최 전 비서관의 소환을 하루 앞둔 13일 “SK비자금 사건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밝힌 것은 우선 ‘성역 없는 수사’ 의지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 시정연설 도중 원고에도 없는 즉석연설을 통해 최씨의 비리 의혹에 관한 의견을 언급했으며 공교롭게도 송 총장은 비슷한 시간에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으며 앞으로도 이런 입장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송 총장의 발언은 이번 수사가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과 국민투표 제안 등 정치권에 의해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수사팀에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송 총장이 ‘법’을 다시 강조한 것은 검찰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초법률적인 정치행위와 수사 개입 우려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라는 검찰 내부의 분석도 나온다.

수사팀도 사건 수사와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결연한 의지를 밝히기는 마찬가지.

또 노 대통령이 이날 송씨 처리 과정에서 ‘화합과 포용’을 강조한 데 대해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은 반응을 극도로 자제하면서도 “우리 입장은 변한 게 없다”며 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팀은 이날 하루종일 서울지검 지휘부와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송씨 처리에 대한 막바지 의견 조율작업을 벌였으며 원칙 수사 방침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씨의 혐의가 대부분 입증돼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정치논리로 방침을 뒤바꿀 수는 없다는 것.

일부 검사들은 불과 10일 전인 이달 3일 노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 기자간담회에서 “송씨의 경우 잘못이 있으면 처벌받아야 되고, 원칙대로 하는 게 옳다”면서 “검찰에 맡기겠다”고 한 발언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일선 검사 및 법조계 반응=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높은 적절치 않은 것이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최씨 사건은 기본적으로 개인 비리에서 시작된 사건이고 그가 대통령의 측근인 만큼 철저하게 파헤쳐서 의혹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법대로만 판단해야 검찰이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송씨 사건의 경우 다른 국가보안법 사건과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인해 구속 기소 등 엄격히 처리를 하는 것이 타당한데도 대통령 발언으로 인해 수사팀이 부담을 안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수사 중인 상태에서 대통령이 미리 처분 결과까지 말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남북관계와 관련된 공안사건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 정도의 방향 제시는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대통령이라면 두 사건 모두에 대해 ‘법대로 처리하라’고만 하고 나중에 형이 확정되고 난 뒤 ‘관용’이나 ‘포용’을 호소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노 대통령이 측근인 안희정(安熙正)씨가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안씨를 ‘동업자이며 동지’라고 공식 언급했던 일이 생각난다”며 “이런 발언은 어떤 식으로든 수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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