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헌주/日언론이 보는 韓國대통령 소송

  • 입력 2003년 8월 14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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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문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언론사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를 보도한 14일 한 일본인 신문기자는 “일본 신문도 앞으로 노 대통령 기사를 쓸 때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의 언론 매체들은 이날 노 대통령의 소송 제기 사실을 일제히 크게 보도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런 소송을 낸 전례가 없었으니 흥미로운 뉴스임에 틀림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앞으로 소송이 진행되면 노무현 정권과 한국의 주요 언론사 사이의 대립관계가 더 심해질 것이란 예상도 이들 매체는 덧붙이고 있다.

일본 신문기자는 무슨 생각에서 “조심해야겠다”는 말을 했을까. 이번 소송을 계기로 노 대통령이 강조해 온 ‘공정한 의제, 정확한 정보, 냉정한 원리를 앞세워야 할 언론의 책임’을 통감했단 뜻일까. 아닐 것이다. 한국의 상황을 농담의 소재로 삼은 것이리라.

이번 송사를 지지율 하락과 정책 혼선의 상관관계는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 탓으로만 돌리고 싶어 하는 노 정권의 편협한 언론관을 표출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도 있다.

작년 대선 때 노 후보의 당선이 한국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성원했다는 일본의 한 북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보도가 아무리 섭섭하더라도 북핵 문제와 경제 등 중요한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언론사와 힘 대결이라도 하는 듯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6월 방일 때 노 대통령이 민간TV에 출연해 진솔한 모습으로, 젊고 소신 있는 새로운 한국의 지도자 면모를 보여줘 일본 사회의 평이 좋았는데….”

AP AFP 로이터 등 서구 언론들은 일본 언론과 달리 소송 제기 사실만을 간단히 보도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서구 통신사들도 노 대통령의 소송 제기를 단순한 ‘분쟁해결의 과정’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이들 통신사는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언론에 대해 ‘전투적 자세’를 견지해 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소송 제기 사태가 벌어졌다는 취지로 보도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노 대통령은 취임 후 6개월간 많은 시간을 한국의 보수 제도언론과 싸우는 데 보냈다”면서 “그는 그의 발언이 편향적으로 보도됐으며 그의 중도좌파 정부에 대한 무책임한 보도가 나오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일본 북한문제 전문가와 같은 말이다.

노 대통령은 소송 제기에 대한 해외언론의 반응을 소개하는 것조차 ‘악의적인 보도’라고 할지 모르겠다. 이런 지적까지 ‘악의적인’ 보도로 본다면 언론이 설 땅은 과연 어디일까.

조헌주 도쿄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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