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공작선 전시장의 日 관람객들 “北은 상종 못할 나라”

  • 입력 2003년 6월 17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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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東京)에서도 아베크족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도쿄만의 유원지 오다이바(お台場). 비가 흩뿌리는 16일 오후 4시경 이곳에 들렀을 때 젊은이들이 아닌 중년의 관광객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이 유원지 내 ‘선박과학관’에는 2001년 말 규슈(九州) 서남부 해역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침몰한 북한 공작선 ‘장어(長漁) 3705’호가 지난달 31일부터 전시 중이기 때문. 북한의 일본인 납치와 핵개발 등이 연일 주요 뉴스를 장식하면서 북한 공작선을 직접 눈으로 보겠다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것.

이 전시관에는 하루 평균 1만2000명이 방문해 관람객이 보름 만에 16만명을 넘었다. 주최측인 해상보안협회 관계자는 “오사카, 나고야 등 지방에서도 관광버스편으로 단체관람을 온다”고 설명했다.

침몰 당시 선체를 원형대로 전시한 옥외의 제1전시장과 공작선 승무원들의 무기, 장비 등을 진열한 제2전시장을 둘러보는 일본인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과학관 홀에서는 공작선의 출현에서 침몰까지의 순간을 담은 영상물을 한편의 드라마로 방영했다.

“말로만 듣던 공작선을 직접 보고 우리(일본) 주변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됐다. 이 정도면 전시상황 아니냐.”(50대 남성)

“무섭다. 북한은 무슨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이웃이 아니다.”(40대 여성)

상당수 관람객들은 북한 공작선을 통해 다시 한번 ‘북한은 상종 못할 나라’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직 엔지니어인 스즈키 오사무(鈴木功·68)는 “북한 공작선은 아마 일본 내 범죄조직과 연계해 마약 따위를 밀수하러 왔을 것”이라며 “수십년간 북한 배가 드나들도록 방치한 것은 일본 정치인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길이 29.68m, 폭 4.66m로 골조만 남은 공작선 선체에는 추격하던 일본 순시선이 발사한 수십여발의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관람객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지대공미사일 발사기를 비롯해 82mm무반동포와 기관총, 자동소총, 수류탄 등이 진열된 무기 코너. 30대 회사원은 “진짜 무기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지금 북한의 모습이 60년 전 제국주의 시대 일본군 이미지와 겹친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무료로 개방한 해상보안청은 안내문에서 ‘일본 주변의 바다는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해 군비 증강의 필요성을 은근히 부각시켰다. 북한 공작선이 전후 반세기 이상 평화헌법에 익숙해있는 일본 국민에게 ‘애국심’과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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