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개혁주체 발언' 논란 확산]"공무원 私조직화 위험한발상"

  • 입력 2003년 6월 15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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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3일 언급한 ‘정부 내 개혁주체조직 구축론’을 계기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청와대측은 “공무원의 자발적 개혁 노력을 지원하겠다는 대통령의 취지를 왜곡해선 안 된다”고 해명했으나 전문가들과 야당은 “공직사회의 단합을 깨뜨리고 사회 전반에 갈등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위험한 인식”이라고 우려했다.》

학계와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공직사회의 ‘정치화’ ‘당파화’를 부르고 결과적으로 국정표류와 정책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광웅(金光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본 공조직을 무시하게 되면 정부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며 “노 대통령은 개혁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승종(李勝鍾)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 사회에선 개혁, 비개혁 성향을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행정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혁조직을 만드는 것은 공무원 사회의 편을 갈라 또 하나의 소외그룹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진민(鄭鎭民)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노 대통령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정부 부처의 공식 라인을 우회해 대통령이나 청와대와 직접 연결되는 조직을 만든다는 것”이라며 “이는 부처 내 위화감을 조성하고 장관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국정방향과 반대로 가거나 안 가는 사람, 옆길로 가는 것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점을 특히 문제 삼아 “무조건 대통령의 뜻에 굴복할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공무원에 대한 협박을 넘어 국민 전체에 대한 협박”이라고 비난했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15일 성명에서 “노 대통령의 언급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전체주의적이고 전제군주적 발상”이라며 “국가조직과 공무원을 사조직화해 히틀러의 나치 친위대나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같은 친위 완장조직으로 만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노 대통령이 이런 위험천만한 발상을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국가적 불행을 예고하는 것”이라며 노 대통령의 발언 취소와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또 이상배(李相培) 정책위의장은 김병준(金秉準) 정부혁신 및 지방분권위원장이 이날 ‘정부혁신위를 통한 부처 내 업무혁신팀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언급한 데 대해 “공무원 조직은 성격상 조직 전체가 장관을 중심으로 통합돼야 한다. 국정을 조정하는 총리실이 있는데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가 정부 부처들을 직할하겠다는 것은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고 비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청와대 해명 "개혁지원 의미…파벌만들기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부 부처 내에 개혁주체세력을 만들겠다’는 발언이 논란을 빚자 청와대측은 15일 “개혁적 시각과 의지를 가진 공무원들이 개혁에 앞장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파벌이나 배타적 개념이 아니다”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김병준(金秉準) 정부혁신 및 지방분권위원장은 이날 자료를 내고 “공식 비공식 경로를 통해 개혁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공무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 모든 공무원이 개혁을 위해 서로 경쟁하고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토록 하겠다는 게 노 대통령 발언의 취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개혁주체세력과 관련된 ‘공식’조직의 예로 정부혁신위 주도로 각 부처에 구성된 ‘업무혁신팀’을 꼽았다.

지난해 대선 직후 ‘개혁세력 1만명 양병론’을 제기했던 성경륭(成炅隆) 국가균형발전위원장도 14일 “‘개혁주체세력’은 기업의 경영혁신팀과 같은 개념으로, 빌 클린턴 미 행정부의 ‘정부재창조론’이나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체계화된 ‘신(新)공공관리’ 이론과도 비슷한 것이다”며 “‘홍위병’ 주장을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밝혔다.

청와대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번 언급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나온 것이란 설명도 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해양부 장관 때 업무혁신을 위한 자발적 연구모임이나 조직 같은 게 생겨 예산을 지원해준 일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노 대통령은 16일 전국 일선 경찰서장 280여명을 대상으로, 20일 오후에는 중앙부처 실국장 등 700명을 대상으로 각각 특강을 할 예정이며, 18일에는 은행장 18명과 오찬 간담회를 갖는다. 또 20일 오전에는 국가정보원을 방문해 직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는 등 공직자들을 상대로 한 ‘개혁 메시지’ 전파 행보를 계속한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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