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방일 첫 날 유사법제 통과 유감이다

  • 입력 2003년 6월 6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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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시작된 어제 일본 참의원이 유사법제를 통과시키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유사법제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이 지켜온 전수방위 원칙을 깨는 구체적 변화라는 점 때문에 일본 내외에서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오죽하면 일본에서조차 과거 전쟁 때의 ‘국가총동원령’을 연상케 하는 ‘전쟁준비 법률’이라는 비판이 나왔겠는가.

일본 참의원은 그런 문제 법안을 노 대통령의 방문 첫날 태연하게 통과시켰다. 노 대통령 개인을 넘어 대한민국에 대한 외교적 모독이며 일본 국회의 한국 경시를 상징하는 도발적 행동이다. 주변국이 우려하든 말든, 국빈이 오든 말든 ‘나의 길을 가겠다’는 식의 국수주의가 새삼 일본의 오만성을 일깨워준다.

일본 의원들에게는 유사법제가 77년부터 추진해온 숙원사업이라지만 국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현충일에 일본 천황을 만나겠다는 노 대통령의 전향적 자세를 그토록 편협한 마음으로 맞는단 말인가.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이 일본 대사대리를 불러 전달한 ‘노 대통령의 방일기간 유사법제 통과에 대한 우려’가 일본 의회에는 고려할 가치도 없는 ‘외교적 넋두리’였단 말인가.

노 대통령은 출국하기 전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일본 국민에게 화해와 협력의 질서로 가자고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런 자세로 국회 연설, 일본 국민과의 대화 등을 통해 양국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력한다지만 이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일본인들이 있는 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백 마디의 말이 아니라 한 번의 행동이 진심을 보여준다. 일본 의회는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될 양국 정상의 합의에 이미 먹칠을 했다.

일본의 각성을 요구하는 것도 이제는 신물이 난다. 이런 일본 국회에서 노 대통령이 꼭 연설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예고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사태를 막지 못한 우리 정부의 미숙한 대응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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