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영/'측근 의혹' 대통령이 밝혀라

  • 입력 2003년 5월 25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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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주변에 석연치 않은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정과 비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것이라는 기대 속에 취임한 대통령이다. 그래서 그의 형 건평씨나 측근 안희정씨 관련 보도는 국민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노 대통령은 여러 차례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원칙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정치인이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원칙적이고 솔직한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 거래 규명하는데 웬 ‘양심수’▼

그런데 최근 보도되고 있는 안씨와 건평씨 관련 의혹사건은 날이 갈수록 더 아리송해지는 것 같다. 검찰이 여론을 의식해 자신을 구속하려고 무리수를 둔다는 안씨의 주장도 그렇고, 안씨를 ‘정치적 양심수’로 부르면서 ‘시민변호인단’을 자처하고 나서는 사람들의 행동도 정상은 아니다. 검찰이 두 번씩이나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당하는 정황도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동업자’로 알려진 안씨를 우리 검찰이 어떻게 혐의 없이 무리하게 구속하려 한단 말인가. 정치자금이든, 사업자금이든 개인과 개인 사이에 돈을 주고받은 일이 ‘정치적 양심’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양심은 범죄 은닉을 위한 값싼 수식어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을 앞세운 여러 단체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러운 판에 수사 중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이른바 ‘안희정 시민변호인단’의 출현은 너무도 엉뚱하다. 재판을 앞둔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 염동연씨의 구명을 위한 민주당 신주류 일부 의원과 당직자들의 탄원 서명운동도 잘하는 일이 아니다. 사법부에 대한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누구를 돕겠다고 움직일수록 나라종금 사건이나 건평씨 문제는 의혹만 더욱 커질 뿐이다. 지금이 대체 어느 시대인데 대통령 측근이라고 억울하게 구속하는 역차별을 한단 말인가. 우리 검찰이 그 정도로 용기 있다고 믿는 철부지는 없다. 검찰이 대통령에 도전하면서 측근을 표적 수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본질의 변화가 없는 안씨에 대한 두 번째 영장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국민정서다.

검찰은 대통령의 친인척도, 측근도 공정하게 수사하고 죄가 있으면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진행 중인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에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이런저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언동을 하면서 나설 일은 전혀 아니다. 지금까지 모든 정치적 의혹 사건들이 그랬듯이 안씨와 건평씨 사건도 그 실체적 진실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는 어차피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버려야 할 구시대의 정치유산이다. 개혁을 표방한 정부는 그런 낡고 소모적인 과정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의 이미지에 걸맞게 시간을 끌지 말고 더 늦기 전에 깨끗이 털고 가야 한다.

노 대통령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특유의 정면돌파로 대통령의 꿈까지 이루지 않았는가. 전직 대통령들과의 차별을 분명히 보여주는 의미에서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개혁’ 대통령의 이미지에 맞다. 대통령이 이 일로 재직 중 형사소추를 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국민은 대통령의 그런 모습에 감동해 퇴직 후에도 처벌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더 늦기전에 털고 국정 전념을 ▼

모든 일이 그렇듯이 대통령의 고백도 시기를 놓치면 감동은 줄어든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국내외 상황 속에서 이 일로 국론이 더 분열되고 소모적인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관련된 어려운 굴레를 벗어던지고 국사에 전념하는 ‘노짱’다운 용기 있는 결단을 기대해 본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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