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국민 혼란만 부르는 '개혁 구호'

  • 입력 2003년 5월 4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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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 특히 청와대와 민주당 주변의 화두(話頭)는 단연 ‘개혁’이다.

‘개혁이냐 아니냐’는 이분법적 논의구조 속에서 ‘개혁’을 말하지 않으면 ‘반개혁’으로 몰릴 것 같은 게 여권 분위기다. 그러나 개혁의 실체에 대한 진지한 논의보다 구호만 앞세우는 개혁의 외침이 국민에게 ‘개혁 현기증’만 초래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마저 든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일 대국민 TV토론에서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과 서동만(徐東晩) 국정원 기조실장의 임명을 강행한 것이 국회 정보위의 부적합 의견을 무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국정원 개혁과 국회 존중 두 가지 다하면 좋겠지만, (국정원)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자칫 국정원의 탈(脫) 정치화, 탈 권력화만 중요했지 여야가 정치개혁 차원에서 도입한 ‘권력기관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의 취지는 무시해도 좋다는 얘기냐는 반발을 살만했다. 특히 ‘4대 권력기관장 인사청문회’는 노 대통령이 지난해 7월4일 기자회견을 통해 부패 청산을 위한 특별입법의 핵심내용으로 야당에 제안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무엇이 진정한 개혁인지 혼란스럽기는 ‘신당 창당 논의’로 시끄러운 민주당 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당 개혁안의 처리가 표류하자 개혁파는 원안 통과를 반대하는 구주류를 ‘비개혁적’이라고 비판하지만, 구주류는 “자기들(개혁파) 뜻대로 안 되면 당을 깨겠다는 ‘협박정치’가 개혁이냐”고 반박한다.

지난달 2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구주류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신주류 개혁파 의원들이 대부분 불참하자 “밖에서 떠드는 분들일수록 의총에 나오지 않는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고 꼬집었다.

의총을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화하자는 것이 정당개혁의 핵심사항인데도 정작 의총은 외면한 채 외곽에서 개혁만 외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한 중도파 중진은 “북한 핵 위기에 경제 위기까지 우려되는 이때 국회에서 국가 안보와 민생 경제를 챙기는 의원과 국회 밖에서 신당 창당만이 개혁이라고 외치는 의원 중 누가 진정 개혁적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개혁 만능 시대’라지만 국민이 원하는 개혁은 ‘구호만 거창하고 실천하지 않는 개혁’보다 ‘소리가 나지 않아도 실천하는 개혁’이란 점을 정치권은 알아야 할 듯싶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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