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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5월 1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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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수뇌부 인사 강행에 맞서 ‘단계적 압박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1일 고영구 국정원장 사퇴권고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원내 투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노 대통령이 국회 정보위의 ‘부적합’ 판정을 받은 서동만 상지대 교수를 굳이 국정원 기조실장에 임명한 데 따른 일차적 반격이다.
이날 열린 주요당직자회의도 강경 기류 일색이었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노 대통령의 국정원 수뇌부 인사는 국민과 국회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국가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국기문란행위”라며 “한나라당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국가의 정체성을 해치는 현 정권의 잘못된 인사와 독단적 국정운영을 바로잡겠다”고 주장했다.
이상배(李相培) 정책위의장도 “노 대통령이 친북 반미주의자들을 안보관련 최고정보기관에 대거 포진시킨 것은 ‘인계철선’ 제거나 다름없이 안보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라며 “국회를 무시하고 야당 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상생의 정치, 국민통합의 정치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나 이번 고 원장 사퇴권고결의안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무위원의 경우 해임건의안을 제출해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할 수 있지만 국무위원이 아닌 국정원장에 대한 사퇴권고결의안은 일반 안건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해당 상임위인 운영위원회를 거치도록 돼 있다.
현재 국회 운영위의 의석수는 민주당 10, 한나라당 11, 자민련 2명이기 때문에 한나라당 단독으로는 결의안을 처리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자민련과 공조해 일단 반수를 넘기더라도 민주당 소속인 정균환(鄭均桓) 운영위원장이 의사진행을 거부하면 결의안 처리가 힘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이종찬(李鍾贊) 천용택(千容宅) 당시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사퇴권고결의안을 냈지만 운영위를 장악한 여당의 반대로 처리가 무산된 적이 있다.
한편 한나라당은 이날 사퇴권고결의안을 제출하면서 소속 의원 153명 전원이 발의한 것으로 이름을 적었다가 뒤늦게 안영근(安泳根) 의원의 이름을 빼는 등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안 의원은 지난달 30일 의원총회에서 공개적으로 결의안 제출에 반대했다.
안 의원은 “이미 총무단을 통해 내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고 했고, 당 관계자는 “관행상 당론으로 결의안을 제출할 경우 전체 의원을 찬성자로 표기해 왔다”고 해명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물러서지 않는 청와대▼
청와대는 1일 서동만(徐東晩)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의 임명이 정당하다는 옹호논리를 펴며 한나라당의 반발에 적극 대응하고 나섰다.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국정원 간부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한나라당의 색깔 논쟁은 냉전시대의 낡은 정치”라고 일축했다.
유 수석은 또 “김영삼(金泳三) 정부 때 김기섭(金己燮) 기조실장의 경우는 전문성이 없었는데도 문제 삼은 일이 없다. 전문성을 갖고 시비를 걸면 모르겠지만 이념의 잣대로 시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지적했다. 유 수석은 그러나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할 부분은 계속 존중할 것이다”면서도 “한나라당이 너무 심하게 나와 대통령의 마음이 상한 게 사실이다”고 전했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도 “대통령이 과거 어느 정부보다 국회를 존중해 왔는데, 최근 한나라당의 공세는 도가 지나치다”며 “민심이 한나라당 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국회는 비판할 권리가 있고, 유감을 표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조실장은 청문회 대상도 아니다. 이번 인사에 대해서는 타협이나 양보는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은 뒤 “국정원을 착실히 개혁하면 이번 인사의 의미를 다 알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심복을 국정원에 보내지 않은 것만 해도 큰 변화가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서 실장은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 자신에 대한 ‘친북 좌파’ 평가에 대해 “앞으로 일을 풀어야 하므로 (국회) 정보위원들의 평가를 최대한 존중할 생각이다”면서 “그러나 1시간가량의 청문회로 한 사람을 친북 좌파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서 실장은 또 “기본적으로 국정원 개혁의 주체는 고영구 원장이며, 나는 고 원장의 개혁의지를 보필하는 것이 임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의 개혁과제에 대해 “안타깝게도 정보가 줄줄 새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강을 세우는 것이 개혁보다 중요하다. 그것을 우선 바로잡는 것을 전제로 개혁해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활동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선 “지금까지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의 특이동향을 보고하고 정치사찰에 활용한 것이 문제였는데 이런 것은 전혀 없을 것이다”며 “다만 정책정보 역할은 포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야당의 국정원 예산 통제 요구에 대해 “국정원의 과제가 탈정치, 탈권력화인 만큼 그런 방향에서 의논하면 합치점을 찾으리라 생각한다”며 “그런 면에서 (내가 기조실장에 임명된 것이) 결코 야당에 불리한 게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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