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3者회담]한미 "대화 형식보다는 내용" 공감

  • 입력 2003년 4월 16일 0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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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자협상을 먼저 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가하는 3자회담으로 시작한 뒤 적절한 시점에 한국이 추가로 참여하는 4자, 또는 그 이상의 국가가 참여하는 형태로 확대한다는 데 관련국들이 의견을 모은 것은 현실과 이상을 절충한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 중국은 이 같은 방식으로 다자협상을 시작할 경우 그동안 북-미 양자회담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북한의 체면을 어느 정도 살려주면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실리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재처리시설을 가동할 경우 몇 주 내지 몇 개월 안에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상황에서 회담의 형식 문제에 집착해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미-중의 3자 회담은 북한에 다자협상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의제와 협상에 참여할 국가의 숫자와 역할 등을 논의하기 위한 일종의 설명회 또는 예비회담의 성격에 가까워 보인다. 이는 90년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4자회담 개최에 앞서 북한을 상대로 4자회담 설명회를 개최했던 것과 유사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알려진 것처럼 북-미-중의 3자회담이 먼저 열릴 경우 한국 등이 참가하는 본회담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양국은 일단 대화가 시작돼 진행되는 동안에는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 등 핵 위기를 고조시키는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다자대화 수용 설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중국도 다자대화의 틀보다는 북핵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일단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한미 양국에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 등과의 물밑 대화 과정에서 다자협상에 응하는 것이 이라크전쟁의 영향과 중국의 설득 때문인 것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해 자신들의 체면을 살려주는 조치를 취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초기의 다자회담에서 빠지는 것은 이를 배려한 것이다.

한편 최근 중국을 방문한 나종일(羅鍾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과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났던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중국의 가장 중요한 한반도정책 목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방지와 비핵화 보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특히 첸치천(錢其琛) 중국 부총리의 지난달 방북 결과를 설명하면서 북한의 다자대화 수용 의사 표명이 시간끌기를 위한 위장전술이 아닌 것 같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첸 부총리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더 이상 대화를 지연시켰다가는 이라크처럼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자 김 위원장도 북-미 대화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후문이다. 첸 부총리는 대신 북한이 다자대화에 응하면 체제안전 보장을 위해 중국이 증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을 김 위원장에게 약속해줬다는 사실도 우리측에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양국은 중국의 역할 확대를 통해 북핵 의혹을 조속히 해소한 뒤 대북 경제지원 등의 사후처리 과정에는 일본 러시아 등을 참여시킨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선(先) 북핵 해결, 후(後) 대북 지원’이라는 2단계 접근전략을 구사한다는 복안이다.

일본과 러시아가 북핵 해결을 위한 다자대화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들을 배제한 채 먼저 3자회담을 추진하는 것도 북핵 문제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포석이라는 게 정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빠진 채 3자회담이 진행되면 국내 일각에서 ‘한국 소외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일본 러시아가 다자대화에서 빠지게 된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할 경우 한미 양국과의 마찰도 예상돼 국내외의 여론이 회담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한기흥기자 eligius@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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