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 출범 한달]"토론중시 바람직…인기영합 불안"

  • 입력 2003년 3월 24일 18시 46분


코멘트
▼전문가 평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변신할 수 있는 실용주의자.’

‘대중 동원을 통해 반대론을 제압하는 포퓰리스트.’

취임 이후 한 달 동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보여준 국정운영 스타일과 리더십의 특징을 전문가들은 이처럼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했다.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국민 설득으로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노 대통령의 의사 결정과 문제해결 방식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제도화된 시스템보다 정서와 여론에 의존해 상황을 돌파하려는 경향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토론정치’와 탈권위주의=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의사 소통을 하려는 탈권위주의적 시도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서울대 김홍우(金弘宇·정치학) 교수는 “할 말 못할 말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토론문화가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일방적이 아닌 쌍방향의 토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하대 이영희(李永熙·법학) 교수는 “노 대통령의 등장 자체가 탈권위적 시대 배경을 갖고 있다”며 “국민이 높게만 보던 대통령이 스스로 자세를 낮추어 친근감 있고 열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정치문화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면 돌파 승부사형=정면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승부사 기질이 원활한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중앙대 최영진(崔榮眞·정치학) 교수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처럼 국면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새로운 상황을 제시하는 승부사 스타일이 눈에 띈다”며 “평검사들과의 대화도 당면한 검찰 인사에 대한 저항을 뚫고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했던 것같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 조동호(曺東昊) 선임연구원은 “장관 뒤에 숨지 않고 직접 국민에게 이해를 구했던 검사와의 대화나 북한 눈치를 보지 않고 대북비밀송금사건 특별검사법을 전격 수용한 점에 비추어 북한과의 관계도 투명하게 돌파해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용적 리더십=노 대통령의 리더십이 근본적으로 실용주의 노선이며 더욱 그런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지낸 이각범(李珏範) 한국정보통신대 교수는 “노 대통령이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한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의 관점에서 판단한 것”이라며 “냉정한 시각에서 국정을 보기 시작한 것같다”고 말했다.

반면 서강대 손호철(孫浩哲·정치학) 교수는 지나친 현실주의가 개악(改惡)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정규직의 해고를 쉽게 해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풀린다’는 식의 TV토론 발언은 전 국민을 비정규직화해서 하향평준화하자는 발상이다. 전북지역 순회토론에서 새만금사업에 1조원 이상의 돈이 이미 투입됐음을 이유로 사업 계속을 지시한 것도 환경보다는 경제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로 변했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제도·시스템 경시=참모진이나 정부 조직 같은 시스템을 활용하기보다는 대통령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오는 상황에 대해 불안정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시절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민주당 이강래(李康來) 의원은 “시스템이 결정하기보다 대통령이 지나치게 노출되는 상황은 결정권자로서 대통령의 입지를 스스로 위축시킬 수 있다”며 “대통령의 생각도 왔다갔다 할 수는 있으나 이 과정을 그대로 노출시키면 국민이 혼선을 느끼고 ‘최후 조정자’로서 대통령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연세대 이정민(李正民·국제관계학) 교수는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이나 인사개혁 정책도 충분한 내부 검토 없이 ‘쇼크 요법’으로 나온 것이라면 장기적으로 부담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포퓰리즘적 태도=대중의 정서를 의식하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의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소기업연구원 류재원(柳在原) 동향분석실장은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의 법인세 1% 인하 방침 발표를 노 대통령이 곧바로 뒤집은 것은 기업·금융인들에게 충격이었다”며 “법인세 인하 방침을 취소하기에 앞서 김 부총리의 설명과 경제전문가들의 조언을 더 들어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김석준(金錫俊·행정학) 교수는 “시민단체와 대중을 동원한 포퓰리즘과 검찰 경찰 행정자치부 등 권력기관의 파격 인사를 통해 정부와 시민사회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충만한 의욕, 준비 안된 수단=많은 성과를 한 번에 거두려고 서두는 바람에 말이 앞선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영희 교수는 “국가경영의 철학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정치적 수사가 많은 편”이라며 “남북관계나 한미관계에 대해 국익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지 않은 채 준비되지 않은 말로 오해를 초래, 수습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정무비서관을 지낸 한나라당 김영춘(金榮春) 의원은 “의욕 과잉으로 대통령이 모든 사안에 개입하려 들 경우 하부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대통령은 각부 장관이 소신과 열정을 펼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에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문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한나라당 평가▼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바로 다음 날인 2월 26일 청와대에 ‘무거운 짐’을 안겼다.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민련과 함께 대북 비밀송금 사건 특검법안을 강행 처리함으로써 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 또는 법안 공포’라는 어려운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이후 한 달은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서로를 ‘시험’해보는 시간들이었다.

한나라당은 특히 법무부 인사파동과 진대제 정보통신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자질 논란, 언론정책 문제점 등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노 대통령의 미국관, 주한미군 철수 문제도 청와대를 겨눈 한나라당의 단골 공격 메뉴였다.

한나라당이 지난 한달 동안 내놓은 논평 127건 가운데 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한 게 절대 다수(111건)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양측의 관계가 급반전된 것은 15일 노 대통령이 민주당의 거부권 행사 건의를 ‘무시하고’ 전격적으로 특검법을 수용하면서부터다.

특검법 공포에 사활을 걸어온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믿어준 만큼 수정안 협상에서 최대한 성의를 보이겠다”고 말했고, 경찰청장(18일) 및 국세청장(20일) 인사청문회도 일사천리로 넘어갔다. 4월 국회에서 추경예산 편성 문제도 적극 협조한다는 방침이다.

현 지도부는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 대해서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며 높은 점수를 주고 있지만, 청와대의 속내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하다.

당내에선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진정한 동반자로 생각하는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정원 도청 의혹이나 세풍(稅風) 사건 등을 둘러싼 검찰의 수사 방향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이런 경계심 때문이다.

한나라당, 정부-민주당 관련 논평 분석(2.25~3.20)
비판 논평(111건)정치(47건)대북송금 특검법 관련(11건), 새정부 조각 및 인사(21건) 등
대북정책(19건) 주한미군 철수론 우려(2건), 북핵문제(6건), 남북교류(7건) 등
경제(10건)경제위기 관련(10건)
사회(35건)언론정책(10건), 사정 및 검찰인사 파동(12건) 등
지지 논평(16건)정치(9건)특검법 관련(2건), 이라크전 관련 (2건) 등
경제·사회(3건)두산중공업 파업해결, 검찰총장 사퇴 등
기타(4건)3·1절, 세계여성의날 등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도움말 주신 분들<가나다순>▼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

김영춘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홍우 서울대 교수

류재원 중소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손호철 서강대 교수

이각범 전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이강래 민주당 국회의원

이영희 인하대 교수

이정민 연세대 교수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

최영진 중앙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