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국정원 도청내용 외부서 작성"

  • 입력 2003년 3월 9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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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선 때 제기됐던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의혹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이 8일 “한나라당이 대선 직전 공개했던 도청 문건은 국정원의 공식 내부 문건이 아니라 국정원의 도청내용이 유출된 뒤 외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기자들을 만나 “폭로 당시 ‘국정원 내부보고 문서’라고 발표한 것은 잘 모르고 그런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료를 한꺼번에 뭉텅이로 받은 것이 아니라 국정원 직원이 오랜 기간 부분적으로 적어 나온 뒤 문서로 작성한 것을 그때그때 건네 받았다”며 “국정원의 엄격한 검문 때문에 ‘그 직원’은 때로는 메모지에, 때로는 손바닥에 (도청 내용을) 적어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신건(辛建) 국정원장이 “듣도 보도 못한 문건”이라며 도청사실을 전면 부인한 것과 관련, “도청 내용이 무척 방대해 실무자가 정리해 상부에 보고해도 과장 국장 차장을 거치면서 솎아지기 때문에 국정원장은 보고받지 못한 내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도청은 (합법적으로) 감청장비가 설치된 부서의 실무자들이 호기심 차원에서 한 것으로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다”고 말해 불법도청이 국정원 상부의 공식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또 “국정원과 민주당은 유출자가 누구인지 파악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김 총장은 “한나라당이 유출경위 및 문건의 공신력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핵심은 국정원의 불법 도청이 사실인지 여부이며, 국정원은 불법 도청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김 총장 발언이 전해지자 즉각 “국정원 도청 의혹은 자작극임이 밝혀졌다”며 한나라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평수(李枰秀)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에서 “김 총장이 폭로와 관련된 진실을 국민 앞에 공개하는 것이 느닷없는 폭로소동에 시달렸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공세를 폈다.

국정원은 한나라당 김 총장의 발언에 대해 자료를 통해 “국정원의 도청 자체가 없었으므로 내부에서 자료를 외부에 넘겨준 직원이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측에 대해 제보자와 도청 근거 제시를 수차 요구한 바 있다”고 말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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