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국정과제점검]대기업 겨냥 ‘고강도 정책’ 강행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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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1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에게 12개의 국정과제를 보고하고 사실상 활동을 마감했다. 인수위가 보고한 국정과제는 앞으로 노무현 정부가 지향하는 한국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설계도에는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새로 도입하는 제도나 기관의 윤곽 등이 들어있다. 인수위가 제시한 국정과제 중 앞으로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재벌개혁 및 남북관계, 상시특검제 등의 운영방향을 해부해 본다.》

▼경제 정책▼

새 정부 경제정책의 밑그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시한 ‘새 정부 경제관련 국정과제’는 크게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 △미래를 열어가는 농어촌 등 4가지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는 기업 규제를 줄이고 회계제도와 공시제도를 개선해 경제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는 정책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인수위가 이번에 가장 공들여 작성했고 새 정부의 컬러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분야는 이른바 ‘재벌개혁’ 부분이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도입, 상속· 증여세 완전 포괄과세도입, 출자총액제한제 강화 등 3대 ‘재벌개혁 과제’를 포함해 경제정책 상당수가 대기업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방향은 성장보다는 분배, ‘선택과 집중’보다는 ‘균형과 통합’에 무게를 두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와 인수위 경제팀의 ‘신념’에 가까운 것으로 ‘노무현 정부’ 임기 중 강력하게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세계적 흐름에 맞지 않는 정책이 많아 자칫하면 한국경제 전반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며 불안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재계간의 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강도 높은 재벌정책=경제분야 인수위 국정과제 보고서는 재벌정책에 관한 한 노 당선자의 공약을 거의 거르지 않고 반영했다. 3대 과제 외에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와 재벌계열 금융사 의결권 제한 등 강도 높은 정책이 추진과제에 모두 포함됐다.

이 밖에 △기업집단 소유지배구조 공개 △공정거래위원회의 사법경찰관 제도 도입 △공정위의 전속고발제도 보완 등으로 공정위를 강화, 기업들의 소유·거래구조를 감시하겠다는 정책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경제계는 새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현석(李鉉析) 이사는 “금융계열사를 통한 부당내부거래나 계열사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면 증권거래법이나 공정거래법 등 기존의 제도 아래 감독 감시 기능을 철저히 하면 된다”면서 “정부도 이를 당장 도입하기보다는 충분히 검토해 신중하게 접근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경제가 선진화되기 위해 불가피한 정책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 정부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낸 숭실대 이진순(李鎭淳) 교수는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도입 등 인수위가 내놓은 재벌관련 정책들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것들로 한국도 어차피 도입해야 할 제도”라며 “구체적인 정책입안과정에서 잘 ‘설계’해 소송남발 등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없는 정책방향”이라고 말했다.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절차 남아=이번에 인수위가 내놓은 정책들은 ‘감독을 강화한다’는 선언적인 정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법을 새로 고쳐야 할 사안들이다.

새 정부는 우선순위를 정해 가능한 것부터 추진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는 이미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가장 먼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상속·증여세 완전 포괄과세는 재정경제부가 민관합동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올가을 정기국회 상정을 목표로 법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법안 모두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법제화과정에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열사 분리청구제나 집중투표제 등 논란의 여지가 큰 사안은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지만 내년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대통령직인수위는 21일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보완적으로 계승한 노무현(盧武鉉) 신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화번영정책’이라고 이름 짓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3단계안을 제시했다.

평화번영정책이 햇볕정책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북한문제의 해결 틀을 한반도에서 동북아로 넓혔다는 것이다. 동북아 평화안보 문제를 포괄적으로 협의하기 위해 ‘남북한+미일중러’의 6자 협의체 구성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즉 ‘한반도의 평화 없이는 한민족의 발전은 물론이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도 어렵다’는 논리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주변국의 적극적 협력을 얻어나간다는 전략이다.

평화번영정책은 또 대북정책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의 지지와 합의를 구하고, 대북사업의 투명성을 높여 ‘남남갈등’을 치유하며, 남북간 합의 사항은 반드시 이행하는 관행을 정착시켜 나간다는 방침을 담고 있다.

노 당선자는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노무현독트린(선언)’을 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밝힐 예정이라고 인수위의 한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3단계안’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에서 시작해 남북 평화협정 체결과 동북아 평화협력체 구축으로 마무리한다는 큰 그림이다.

노 당선자측이 추진하는 ‘평화협정’은 군사적 긴장 완화 등 모든 평화 조치를 끝마친 뒤에야 체결하는 ‘완료형 협정’이 아니라, 정전(停戰)상태의 한반도에 전쟁 종료를 선언하고 그 후 실질적 평화 조치를 계속해 나가는 ‘진행형 협정’을 의미한다고 인수위측은 밝혔다.

남북간 군 인사 교류나 대규모 군사훈련 상호 참관 등을 의미하는 ‘운용적 군비통제’ 추진 방안을 평화체제 구축 마지막 3단계에 넣은 것은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후에야 병력의 후방 배치 및 감군(減軍) 같은 ‘구조적 군비통제’를 추진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같은 평화체제 구축안이 상당히 낙관적 전망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며 남측을 협정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평화체제 구축안의 ‘첫 단추’인 북한 핵문제만 평화적으로 해결해도 ‘노무현 정부’는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새 정부의 5대 차별 시정 추진일정
추 진 내 용추진 시기
-비정규직 근로자의 유형별 차별해소 법안 마련
-외국인 고용 합법화 위한 특별법 제정
2003년 상반기
-차별금지법 제정 및 차별시정위원회 설치 위한 민간
공동추진단 구성
-장애인에 대한 적극적 차별시정조치(AA) 도입
-장애인 기업 설립, 육성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근로자 축소
-남녀차별 시정명령제 도입 및 관련법 개정 추진
2003년
-여성 고용에 대한 적극적 차별시정조치(AA) 도입 2003년 중 방침 확정
-민간기업의 지방대학 출신자 채용 인센티브제 도입2003년 중 시행방안 연구

▼5大 차별 해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국민통합 차원에서 임기 첫해인 올해 안에 장애인, 비정규직 근로자, 외국인근로자, 여성, 지방대 졸업생 등 5대 차별분야의 차별해소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인수위 사회문화여성분과는 최근 작성한 ‘중점과제별 추진시기’ 자료에서 올해 상반기 중에 추진할 과제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차별 해소를 위한 법안과 외국인 고용 합법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제시했다. 특히 고용주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현행 노동관계법을 제대로 적용하도록 당국의 감독을 강화하는 문제는 즉시 추진하기로 했다.

노 당선자측은 또 올해 안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차별시정위원회를 설치하기 위한 민관 공동추진단을 구성하고, 남녀차별 시정명령제 도입과 관련법의 개정도 추진키로 했다.

인수위가 차별 해소를 위한 핵심방안으로 제시한 ‘적극적 차별시정조치(AA·Affirmative Action)’의 도입 시기는 ‘장애인→여성→지방대 졸업생’ 순으로 정해졌다.

인수위는 그동안 정부가 차별시정의 방법으로 고용할당제를 활용해왔으나, 역차별의 부작용과 실효를 뒷받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책이 없었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인수위는 인센티브를 주는 AA의 도입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민간 기업에서 여성, 장애인, 지방대 졸업생을 채용할 경우 정부가 발주하는 각종 사업의 입찰에 우선권을 주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중 장애인 고용에 대한 AA 적용은 연내에 바로 추진하고, 민간 및 공기업의 여성 고용에 AA를 적용하는 방안은 올해 안에 구체적 방침을 먼저 확정한 뒤 추진키로 했다. 민간 기업의 지방대 출신자 채용에 인센티브를 주는 문제는 올해 시행방안을 연구키로 했다.

그러나 인수위는 비정규직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AA를 적용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특별법 제정 등 별도의 보호조치를 강구키로 했다.

한편 빈부격차 해소 방안으로 제시한 △부동산 보유과세의 과표현실화율 단계별 제고 △부동산 거래세 부담 경감 △우리사주제도에 대한 세제 금융지원 확대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도 도입 등은 올해 상반기에 방침을 확정해 추진키로 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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