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후보 “美 안갔다고 반미주의자냐 반미주의자면 또 어떠냐”

  • 입력 2002년 9월 11일 22시 36분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11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미국에 가본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바빠서 안 갔다고 했다. 노동위를 했는데 미국 갈 일이 있느냐. 미국 안 갔다고 반미주의자냐, 또 반미주의자면 어떠냐”고 말했다.

노 후보는 이날 오후 대구 영남대에서 열린 ‘한국 정치 현실과 개혁 과제’라는 제목의 초청 강연에서 역사 인식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노 후보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강연장을 가득 메운 600여명의 청중은 의아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일부는 옆 사람과 수군대기도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노 후보는 “말을 하고 보니 반미주의자는 좀 그렇다. 대통령이 반미주의자라면 우리 국익에 큰 손해를 끼칠 것이다”며 “말을 하다보니 그렇게 됐는데, 왜 그 얘기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다녀가서 미국 대통령이 됐느냐”고 말했다.

노 후보는 이 밖에도 이날 강연에서 ‘역사를 바꾸자’, ‘교육을 바꾸자’는 말을 특히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노 후보는 “세상을 바꾸자면 역사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역사를 다시 쓰자. 쓴다는 말은 평가한다는 말도 있기 때문에 나는 역사를 다시 만들자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노 후보는 제도 개혁 등을 언급하는 가운데 “제도를 어떻게 바꾸느냐,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 교육은 누가 시키느냐. 사회를 지배해왔던 사람들이 교육을 지배해 왔다. 자칫 잘못하면 기존 질서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교육을 주도하니까 사회가 변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 후보는 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다시 평가해달라. 물론 (DJ가) 고칠 것도 있지만, 역사의 평가라는 것은 우리의 감정적 평가와 다르다. 20년 후에 크게 보아서 DJ가 민족의 방향을 바르게 끌고 갔느냐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생각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노 후보의 강연을 지켜본 이 대학 정치행정학과 3학년 김모군은 “청중이 많다보니 노 후보가 흥분한 것 같다. ‘반미주의자’ 발언은 설혹 취소했다 하더라도 대선 후보로서는 적절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구〓이승헌기자 ddr@donga.com

◇노무현 후보 미국 관련 발언

시기발언 내용
4.12한국이 미국에 대한 의존관계에서 대등한 상호협력관계를 이뤄야 한다. 한꺼번에 큰 변화를 주기보다 점차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4.25미국을 한번도 안 갔는데 바빠서 못 갔다. 볼 일 있으면 간다. 볼 일 없어도 시간 많이 남으면 간다. 국내정치용 사진 찍기는 안 한다.
5.14경선 과정에서 ‘미국을 모르는 대통령이 한국을 이끌어갈 수 있느냐’는 얘기가 나왔는데 (미국에) 한 번 갔다와서 뭘 알겠느냐.
5.17나는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국가원수가 된 뒤에 미국에 가서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 되는 것이다.
9.10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동맹국인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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