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본질 잊은 남북 경추위

  • 입력 2002년 8월 30일 18시 07분


어제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제2차 회의가 내놓은 합의문은 일단 겉으로는 ‘성공작’처럼 보인다. 남측은 북한에 쌀 40만t과 비료 10만t을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제공하는 대신 이번 회의에서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및 도로연결 착공식 날짜를 확정한다는 애초 목표를 달성했다. 이밖에 개성공단과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 금강산댐 공동조사 등에서 합의를 했으니 정부로서는 자찬할 만도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누차 강조했듯이, 중요한 것은 합의 그 자체보다 실천여부에 있다.

여기서 남북 경협사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남측 입장에서 경협사업은 당장 이윤을 내기 위한 사업이라기보다는 남북이 경제관계를 심화시켜 나감으로써 장기적으로 긴장을 낮추고 전쟁 위험을 줄이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는 일이다. 반면 북한 입장에서 경협사업은 어려운 경제사정에 즉각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남북간의 협상과정을 보면 이런 주객전도(主客顚倒)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남측은 시종 경협사업에 애면글면 매달리는 형국이었고, 정작 지원을 받는 북한은 당당한 모습이다. 이번 경추위 회의 역시 북한이 마지막 순간까지 합의문 문안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는 등 이 같은 기본 구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번에는 북한이 예전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왔다고 하지만 김대중(金大中)정부 임기 말에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얻어내겠다는 속셈은 혹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정부는 이번에 경의선과 동해선의 북측구간 공사를 위해 레일과 침목, 심지어는 자갈까지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도 오히려 북한이 은혜를 베풀고 남측은 이에 감지덕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론적으로 보면 남북 경협사업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북한에 사정해가면서 하는 경협사업에 정부가 언제까지 매달릴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 이런 햇볕정책에 식상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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