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북교류 '속빈 강정'

  • 입력 2001년 12월 12일 18시 17분


남북간의 화해 분위기 속에서 각 대학들이 앞다퉈 추진했던 남북 대학 학술교류사업이 북한측의 무성의와 무리한 각종 지원 요구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1998년 성균관대 강원대 경남대 등을 시작으로 각 대학들이 북한 대학과 학술교류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한 대학은 전무한 실정이다.

서울대 고려대 등은 북한 대학의 상징인 김일성종합대학과 학술교류 협정을 추진했지만 북한측이 냉담한 반응을 보여 현재 답보상태에 빠졌다.

서울대 관계자는 “국제회의 등에서 북한 대학 관계자들을 만나 ‘교류협력’ 말만 꺼내면 자리를 피하곤 한다”며 “북한측의 연락창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고려대는 99년 총장이 직접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대학 관계자를 만나 교류 협력을 논의했지만 이후 북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북한이 반출이 금지된 486급 이상 컴퓨터 등 무리한 지원을 요청하는 바람에 교류가 무산된 경우도 허다하다.

연세대는 올해 초 중국의 옌볜과학기술대와 공동으로 북한에 공대 설립 계획을 검토하다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재원 조달 문제 때문에 기획단계에서 백지화했다.

숭실대는 지난해 6월 김일성종합대 김책공대 김영직사범대 등과 정보화협력을 추진해 김영직사범대와는 협정체결 단계에까지 갔다가 그만뒀다. 북한측이 펜티엄급 컴퓨터 50여대를 지원해달라며 ‘선(先) 지원, 후(後) 협상’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1년 전부터 평양외국어대와 교류협정을 추진해온 한국외국어대는 컴퓨터 지원 요청을 받고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가 최근 북한측이 외대가 개발한 외국어사전과 교재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사업을 재개했다.

98년 남북 대학 교류사업 초기에는 일부 대학들이 북한측으로부터 교류협력의 대가로 옥수수와 쌀 등을 지원해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교류를 추진하다 포기한 한 사립대 관계자는 “북한측이 순수한 민간 차원의 대학 교류조차 정치적 경제적 논리로 추진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측은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으면 교류에 나서지 않아 남북 대학 교류 협력에 나선 대학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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