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권 현주소 上]'억눌린 인권' 폭발

  • 입력 2001년 11월 27일 18시 40분


《국가인권위원회의 출범을 계기로 인권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새롭게 높아지고 있다. 인권위에 접수되고 있는 진정들은 그동안의 작지 않은 민주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위해 아직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1년 한국 인권’의 현주소와 전망 등을 3회에 걸쳐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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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로 접수되고 있는 각종 진정들에서 엿볼 수 있는 일반 국민의 인권의식과 기대 수준은 실로 높고 다양했다. 당초 인권위가 출범하기 전까지 많은 관계자들은 대부분의 진정들이 공권력에 의한 가혹행위 등 주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 피해 사례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 이외에도 그동안 사회 분위기에 짓눌려 공개적으로 표출되지 않았던 많은 사안들이 일시에 분출됐다.

이에 따라 인권위의 출범은 인권문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반응이다.

▽진정 사안별로 본 국민의 인권의식〓26, 27일 이틀간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내용 중 가장 많은 것은 역시 권력기관이나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사례.

74년 박정희 정권 당시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됐거나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된 사람들의 유가족들은 20년이 넘도록 밝혀지지 않았던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또 군에서 의문사한 아들에 대한 당시 군의 부검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며 가혹행위 여부를 밝혀달라는 진정도 접수됐다.

얼마 전 고액과외비 부담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여고생이 경찰의 가혹행위 때문에 허위자백했다는 내용의 진정이 접수되기도 했다.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행위를 바로 잡아달라는 진정도 많았다. 서울대 의대 김용익 교수(49)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은 대학 제자를 위해 진정서를 접수시켰다.

중국동포 등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법체류라는 이유만으로 임금 및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등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며 진정서를 냈다. 특히 이들은 “크레파스나 물감회사가 ‘살색’이라는 상품 표시로 한국인들에게 인종차별 의식을 심어주고 있다”며 차별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해 눈길을 끌었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성전환자)의 인권침해 사례도 눈에 띄는 대목. 정모씨(23)는 99년 군복무 중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군 병원에 입원했으나 의사들에게서 ‘호모’라는 비아냥을 듣고 강제로 에이즈 검사를 받는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밖에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 및 수형자의 가족들도 현행 27개월의 복역기간이 복무기간보다 1개월 긴 것은 심각한 인권유린이라며 진정을 내기도 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전문가 의견 "인권위 他부처와 협조 적극 조사해야" ▼

전문가들은 그동안 사회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해온 다수 국민의 인권 의식과 기대치에 비해 이를 포용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제도적인 장치나 기구가 사실상 없었다는 문제점이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위가 이를 적극 수용하는 등 향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다면 인권수준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인 차병직(車炳直) 변호사는 “80년대 이후 많은 국민이 자신의 인권과 권리에 대해 왕성한 인식이 시작됐지만 이를 포용할 별다른 국가기관이 없었다”며“인권위가 이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양대 법학과 권형준(權亨俊) 교수는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인권위가 다른 부처와 적극적인 협조체제를 이뤄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해결해주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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