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한 정치권 "진승현게이트 실체 드러났다"

  • 입력 2001년 11월 23일 06시 19분


‘진승현 게이트’의 먹구름이 정치권으로 급속히 몰려들고 있다. 진씨가 지난해 4·13 총선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에게 무더기로 선거자금을 제공했다는 설(說)이 점차 구체적인 사실로 드러나면서 정치권이 긴장에 휩싸이고 있다.

진씨의 선거자금 제공 시도는 우선 민주당 김홍일(金弘一) 의원측의 사실확인으로 실체의 한 단면이 드러났다. 비록 김 의원이 진씨의 총선자금 지원 제의를 거절했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다른 정치인들에게 자금 제공을 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 관계자들도 진씨의 정치인들에 대한 선거자금 제공이 설의 단계를 넘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진씨가 1000억원의 돈을 짧은 기간에 번 상태였던만큼 정치권의 보호막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진씨가 보호막을 찾고 있을 때 정성홍(丁聖弘) 전 국가정보원 경제과장이 접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무튼 ‘진승현 리스트’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경우에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말기 정치권을 강타했던 ‘한보 리스트’ 태풍을 연상케 할 만큼 파괴력이 있을 것이라는 게 정가안팎의 관측이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지난해 ‘정현준 게이트’와 ‘진승현 게이트’가 잇따라 터졌을 때에도 언론과 야당은 정씨 사건에 많이 주목했지만, 사실은 진씨 사건이 더 크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며 “올 것이 왔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여야는 진씨 리스트의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며 원칙적인 입장만을 밝히고 있다. 민주당 이협(李協) 사무총장은 “리스트 얘기는 금시초문”이라며 “언론을 통해 그런 의혹이 알려진만큼 진실을 규명하지 않으면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에게 불신을 받고 매도당할 것”이라며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게이트’ 정국을 호도하기 위한 ‘물타기’가 아니냐며 진승현 리스트설의 저의를 의심하면서도 리스트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장광근(張光根) 수석부대변인은 “느닷없이 리스트와 설이 제기된 것은 현정국을 호도하고 다른 쪽으로 정국을 몰고 가려는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진승현씨가 지난해 총선 당시 여야를 불문하고 1000만∼2000만원씩의 선거자금을 뿌렸다는 얘기를 다른 경로를 통해 들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해 진씨 로비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확인했다.

<윤영찬·김정훈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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