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이산상봉 무산…애끓는 실향민

  • 입력 2001년 11월 14일 18시 20분


“추운 겨울 잘 지내라고 내복까지 준비했는데….”

14일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이 결렬돼 다음달 10∼16일로 의견이 모아졌던 제4차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되자 북의 가족을 만날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던 남측 이산가족들이 크게 낙담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12일 북한측의 일방적인 연기 통보로 한번 가슴앓이를 했던 터라 이들의 실망과 서운함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9남매 중 맏이로 북에 있는 여섯명의 동생들을 만나기로 돼 있던 강일창(姜日昌·75·서울 노원구 공릉동)씨는 서운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꿈에 늘 보이던 동생들이 요즘 꿈에 잘 나타나지 않아 이상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렸어. 동생 가족들 것까지 양말 60켤레, 가죽장갑 20켤레 등을 준비했는데….”

강씨는 그러나 “언젠가는 동생들을 만나리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다”며 빨리 회담이 재개돼 북의 가족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북에 있는 막내아들(60)을 만날 꿈에 부풀었던 권지은(權志殷·87·여·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씨는 상봉이 무산됐다는 뉴스를 듣고 아예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함께 사는 딸 이명옥(李明玉·54)씨는 “지난달 상봉이 연기된 뒤 한참이 지나서야 어머니가 생기를 되찾으셨는데 이번 일로 말도 없으시고 얼굴도 흙빛이 되셨다”며 “여섯살짜리 아들을 시아버지 품에 맡기고 내려오신 뒤 50여년을 힘들어 하셨는데 오늘 일이 마음의 상처로 남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자신들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더 안타깝게 생각했다.

북에 남은 남동생 윤희상씨(70)가 남쪽의 누나와 형들을 찾는다는 얘기를 듣고 5남매가 얼싸안고 울었다는 윤숙자(尹淑子·78·여·서울 강서구 가양동)씨는 “이제 형제 자매들도 모두 나이가 들어 저세상으로 갈 날이 머지 않았는데 어떻게 더 기다릴 수 있겠느냐”며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북측이 차일피일 이산상봉을 미루는 것에 대해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을 만날 예정이던 신응선(辛應善·81·경기 고양시 일산구)씨는 “북측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따뜻한 내년 봄에는 꼭 만날 수 있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민동용·최호원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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