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이 듣고온 험악한 추석민심 "나라꼴을 보니 울고 싶다"

  • 입력 2001년 10월 3일 18시 39분


《절망 환멸 분노 불신 냉소 슬픔 짜증 소외감…. 추석연휴 기간 지역구에 다녀온 여야 의원들이 전하는 민심은 부정적인 단어들로 얼룩져 있었다. 의원들은 3일 “나라꼴을 보니 울고 싶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며 흉흉한 민심을 전했다. 다만 야당 의원들은 일반적으로 “국민은 이 정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여당 의원들은 대체로 “민심 이반은 정치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 때문이다”고 주장하고 있어 여야의 해석은 달랐다.》

▽각종 부정부패 의혹과 정치 불신〓한나라당 이주영(李柱榮·경남 창원을) 의원은 “이 정권은 인사 때도 자기네 사람들만 앉히더니 해먹는 것도 끼리끼리 다해먹는다는 비난이 빗발쳤다”며 “‘이용호 게이트’로 경남 민심은 갈 데까지 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심재철(沈在哲·경기 안양동안) 의원은 “부정부패가 너무 심해 이대로는 못 참겠다는 얘기가 끝이 없었다”고 전했고 같은 당 김문수(金文洙·경기 부천소사) 의원은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주요 기관에 대한 불신감이 극에 이른 것 같았다”고 전했다.

또 자민련 이양희(李良熙·대전 동) 의원은 “‘도둑놈들 많이도 해먹었다’는 등 원색적인 비난이 많았다”고 전했고, 같은 당 조부영(趙富英) 의원은 “다른 정권 때는 딴 동네 사람도 좀 끼워주더니 이 정권에서는 아예 끼워주지도 않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반면 민주당 장영달(張永達·전북 전주완산) 의원은 “대통령이 뭘 좀 하려고 해도 지역 사람들이 범죄나 저지르니 되느냐. 도둑놈들 다 잡아들여야 한다고 푸념하더라”고 전했고, 같은 당 박주선(朴柱宣·전남 보성-화순) 의원은 “지역민들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한 점 의혹 없이 이용호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의 이부영 (李富榮·서울 강동갑)의원은 “여야 지도자들이 모두 지금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걸 정말 위기로 생각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부영 의원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보다 더 큰 위기가 오고 있지 않느냐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다. 점점 더 살기는 어려워지는데 희망의 싹을 보기 힘들다는 절망감이 짓누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백승홍(白承弘·대구 중) 의원은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심리는 찾아보기 힘들고 짜증과 분노로 뭉쳐져 있다. 상인들은 ‘어차피 이판사판이니 이 정권이 빨리 좀 끝났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민주당 장성민(張誠珉) 의원은 “정쟁에만 밤을 새우지 말고 민생경제를 살리는 데 정치권이 힘을 모아달라고 애원에 가까운 호소를 하더라. 어깨가 무거웠다”고 전했고 같은 당 정세균(丁世均·전북 진안-무주-장수) 의원도 “제발 여야간에 싸우지 말고 경제 살릴 궁리 좀 하라는 주문이 많았다”고 전했다.

자민련 송광호(宋光浩) 의원은 “IMF 사태 직후에는 퇴직금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추곡가 및 대북 쌀 지원 문제 등〓민주당 정장선(鄭長善·경기 평택을) 의원은 “농민들의 쌀값 불안심리가 매우 높았다. 농민들은 북한에 보내든, 서민에게 주든 쌀값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신영국(申榮國) 의원은 “북한에 아무리 퍼줘도 북한은 변하지 않는데, 남한의 어려운 사람부터 도와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자민련 이양희 의원도 “생각보다 대북 쌀지원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고 전했고 조부영 의원은 “정부가 수매량을 늘려준다고 해도 근본대책이 되겠느냐고 하더라. 하도 불만이 팽배해 농촌문제는 뭘 물어볼 여지도 없더라”고 전했다.

한편 DJP 공조 와해와 관련, 민주당 박주선 의원은 “공조 붕괴 이후 국정운영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으나 자민련 이양희 의원은 “당 살림살이가 어렵겠다고 걱정하면서도 공조파기는 잘했다는 게 주류였으며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가 오랜만에 한번 시원하게 잘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상반된 분위기를 전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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