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 ‘눈물의 회동’…감정 앙금 다 풀렸을까

  • 입력 2000년 12월 11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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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동교동계가 10일 밤 ‘11인 회동’을 계기로 “초심(初心)으로 돌아갔다”며 단합을 과시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이 전하는 이날 밤의 대화내용은 한솥밥을 먹던 옛 동지들간의 ‘감정 풀기’에 가깝다.

동교동계 분화(分化)를 유발한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과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의 차기 대선구도에 대한 시각차 및 그에 따른 당내 역학구도상의 갈등요인은 ‘눈물의 회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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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최고위원이든, 한최고위원이든 ‘김대통령 이후’에 대한 생각은 달라도 일단은 화해제스처가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나중에 각자 어떤 길을 가건 당면한 위기 앞에선 서로 손을 맞잡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경위야 어떻든 동교동계의 ‘초심’ 선언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좀더 편한 마음으로 당정개편 구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회동 역시 ‘동교동식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민주당 동교동계 의원 11명의 모임은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우선 김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것을 자성했다. 그리고 ‘권(權)―한(韓) 갈등’과 동교동계의 분열 양상을 자탄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후 8시부터 시작된 술자리 도중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장면이 TV에 나오자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반주 삼아 곁들인 포도주는 금세 양주로 바뀌었고, 밤 12시경 4시간의 회동이 끝났을 때는 7병의 양주가 비워져 대부분 만취상태였다.

다음은 회동대화록 요지.

▽배기선(裵基善)의원〓최고위원 선거 때부터 최근까지 동교동계 갈등만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춥고 어렵고 힘들 때도 우리가 하나였는데 요즘처럼 분열돼서야 되겠습니까.

▽정동채(鄭東采)의원〓대통령은 앞으로도 큰일을 하실 분인데 우리가 뭉쳐 최선을 다합시다.

▽설훈(薛勳)의원〓제가 죄인이고 제 탓입니다. 형님들을 잘못 모셨습니다. 특히 장형(長兄)이신 권노갑최고위원을 한번도 도와드린 적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오늘 이후 권최고위원의 참모역할을 하겠습니다.

▽한 초선의원〓두 형님이 싸운다는 얘기가 나온 뒤 지역구에 가보니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들이냐’는 여론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국민은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권최고위원〓윤철상(尹鐵相), 너 국회의원 되려고 대통령을 따라다녔느냐. (다른 의원들을 가리키며) 너희들도…. 우리,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자. 그동안 소원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자. 나도 외로운 사람이다.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오늘은 동교동 입문 이래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다. 그러나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은 내가 사무총장 옷을 벗고 끝까지….

▽초재선의원들〓그 사람도 나름대로 충정을 가지고 한 얘긴데 우리가 다 안아야 합니다.

▽한최고위원〓(권최고위원에게 웃으면서) 형님은 정최고위원에게 사무실도 내주고 많이 도왔다던데 나에게는 1원 한푼 준 적 있소?

▽권최고위원〓그건 맞아. 내가 일본에서 돌면서 청와대 아무개가 나를 귀국하지 못하게 할 때 자네가 내가 들어와야 한다고 대통령께 건의했지. 그때 대통령께서 ‘자네는 정치를 잘 몰라’라고 말했다고 나도 들었어. 내가 감옥에 갔을 때도 자네가 제일 먼저 찾아와 위로하곤 했지. 자네에게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내 마음은 변함이 없네.

▽한최고위원〓나는 얘기도 말아야겠어요. 무슨 일만 터지면 나를 지목하고 ‘한화갑이가 어쨌다’고 그러는데….

▽권최고위원〓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자. 나를 불러 좋은 얘기를 많이 해달라. 초심으로 돌아가 대통령을 열심히 도와드리자.

대화를 마친 동교동계 의원들은 어깨를 걸고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며 자리를 파했다. 이날 모임에 대해 민주당 내 비동교동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동교동계가 다시 단합하게 돼 다행”이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자기들끼리 싸우고 화해하고…. 이 당에는 동교동계만 있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엇갈렸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바로잡습니다]

△‘동교동계 눈물의 회동’ 기사와 관련, 한화갑최고위원은 자신이 권노갑최고위원에게 ‘형님은 정동영최고위원에게는 사무실도 내주고 많이 도왔다던데’라고 한 말은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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