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방북단 개별상봉]홍대중씨 "꿈을 꾸고 있는듯…"

  • 입력 2000년 12월 1일 14시 49분


전쟁통에 헤어진 아내의 처녀 때 사진을 평생 간직해 온 홍대중(洪大仲·79·서울 성동구 옥수동)씨는 1일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손때묻은 사진을 펴놓고 주름진 아내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어루만졌다.

홍씨는 "일생동안 내가 없어 얼마나 고생했느냐"며 평생 수절해 온 아내의 등을 두드렸고, 아내 박선비(74)씨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홍씨가 "연년생 아들이 있어 전쟁통에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잘 자란 것을 보니 정말 귀한 일"이라며 "나는 팔순 나이이지만 다른 사람이 '주름이 없다'고 말하는데 당신은 나보다 5년 아래인데도 주름이 많은 것을 보니 내가 고생을 너무 시킨게지…"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농사를 짓고 살았던 홍씨는 지난 50년 9월 공산당의 강제징집을 피해 아내와 아들 둘, 딸 하나를 남겨놓고 홀로 서울로 내려왔다. 북한에 남겨놓은 어머니와 가족들을 생각하며 홀로 지내던 홍씨는 헤어진 지 21년만인 지난 71년 더 이상 가족을 만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재혼했다.

연년생으로 남겨 놓은 아들(형주·54, 철주·52)과 딸(형순·51)이 건강하게 자란모습을 보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아들 형주씨는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혼자서 마음 고생을 했지요"라며 "이게다 아버지가 없어서 만든 주름살이에요"라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들에게 미안한듯 홍씨는 "그래도 난 20년간 혼자 지내다가 이제는 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 뒤 결혼했다. 처남은 바로 결혼했는데…"라고 말문을 흐리며 미안한 마음을 나타냈다.

평생 가족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홍씨. 아들은 홍씨가 그리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옛날 사진을 드렸고 홍씨는 사진을 가슴에 꼭 안고 "죽는 날까지 부모님의 모습을 봐야지"라고 혼잣말을 되새겼다.

지난 세월과 헤어진 아픔으로 원망도 했지만 역시 만나 보니 가족의 정은 금방되살아났다. 홍씨 가족은 즉석에서 50년만의 가족사진을 찍었고, 아들은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되는 듯 연신 아버지의 손과 발을 어루만졌다.

형주씨는 몸의 왼쪽 신경 일부가 마비됐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어떻게 치료받고 계시냐"며 눈시울을 적셨다. 아들이 "아버지 오래 사세요"라고 말했지만 홍씨는 "그런데 내가 너무 아파 오래 살 것 같지 않아"라며 가족들과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했다.[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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