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서울]센트럴시티는 울음바다

  • 입력 2000년 11월 30일 18시 44분


아버지와 딸, 남편과 아내, 형제 자매는 하염없이 울었다. 반백년의 아픔, 그토록 가슴 저몄던 그리움을 모두 씻어내려는 듯 서울 센트럴시티의 상봉장은 차라리 눈물바다였다.

▼팔순아버지 "내가 죄인이다"▼

○…북에서 온 아버지 신용대씨(81)를 만난 아들 문재씨(51)는 상봉시간 내내 아버지의 두 손을 움켜잡았다. 아버지 신씨 역시 “내가 죄인이다”는 말을 반복하며 장성한 아들을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북측 방문단 최고령자인 신씨가 “내가 너를 만날 때까지 살아 있으려고 5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했다”며 “갓난아이였던 너를 두고…”라고 말을 잇지 못하자, 아들 문재씨 역시 “아버지가 1차상봉 후보자 200명에 들었다가 막판에 빠져 영영 뵙지 못할 줄 알았다”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얼마나 아버지를 그리워하셨는지 모른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신씨는 음악교사로 재직 중이던 50년 6월 부인과 아들 문재씨를 남겨두고 북으로 갔었다.

○…북에서 오는 아버지 황영규씨(75)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딸 성애씨(54)는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어머니 성금분씨(75)를 보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당초 어머니 성씨는 “시누이에게 딸을 맡기고 재가한 내가 무슨 낯으로 네 아버지를 보겠느냐”며 성애씨의 간곡한 재회 요청을 뿌리쳤었다.

그러나 성씨는 북에 부인을 두고 월남해 자신과 재혼한 지금의 남편이 “당신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설득해 오후에 급히 상봉장에 나와 황씨와 감격의 해후를 나눈 것.

▼김영환씨 "동생이 배우라니…"▼

○…양강일보 편집부국장인 오빠 김영환씨를 만난 탤런트 김영옥씨는 “공부 잘하고 재능 많던 오빠에게 딱 맞는 직업”이라며 “내 예상이 맞았다”고 환한 표정. 오빠 김씨도 “네가 이곳에서 ‘인민배우’인 줄 몰랐다”며 “이렇게 만나보니 50년 세월이 한순간 같다”고 응답.

연희대 영문과 2학년 재학 중 의용군에 끌려갔던 영환씨는 5남매 중 장남이었고 영옥씨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오빠에게 클래식 음악을 종종 배웠다는 영옥씨는 “지금 내가 아는 거의 모든 노래는 그때 오빠가 가르쳐준 것”이라며 오빠의 손을 잡았다.

○…50년 만에 딸을 만나는 아버지의 마음은 회한과 기쁨으로 가득 찼다. 반백년 만에 남쪽의 아버지 권경태씨(90)를 만난 딸 순호씨(67)는 연방 “아버지”만을 외치며 울먹였다.

아버지 역시 혼잣말로 무언가를 웅얼거리며 ‘이젠 됐다’는 듯 연방 딸의 등을 어루만졌다.

서울이 고향인 순호씨는 경기여고 2학년이던 51년 서울대에서 주최한 의료봉사활동에 참가했다 소식이 끊겼다.

<서정보·김준석·이동영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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