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2중대'발언]국회에 날아든 '한나라發 보수彈'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9시 00분


13일 하루 순항했던 국회 대정부 질문이 14일 ‘우파 보수 세력의 기수’임을 자처해 온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의원의 돌출 발언으로 파행을 겪었다.

4번째로 단상에 오른 김의원은 국가보안법 개정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남한 사회를 통째로 김정일(金正日)에게 갖다바치는 통일전선전략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민주당을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말조심해, 말조심” “발언 취소하라” “나와서 사과해” 등의 고함이 쏟아졌다.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도 나서 “민주당에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며 “속기록에서 삭제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은 계속됐다. “저 사람이 국회의원이야 뭐야” “제명이야, 제명” 등의 고함이 이어졌다. 이의장도 “아무리 그래도 남의 당을…”이라고 언성을 높이며 정회를 선포했다.

정회 직후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이주영(李柱榮) 김종하(金鍾河)의원 등은 “잘했다”며 김의원을 격려했다. 일부 의원들은 “역시 ‘보수의 보스’답다”고 치켜세웠다.

또 최연희(崔鉛熙)의원은 “밀양(김의원 지역구)에선 잔치를 벌이고 난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고, 권오을(權五乙)의원도 “내가 예전에 ‘친북세력’ 발언을 했을 때도 고향 사람들이 ‘잘했다’고 하더라”며 가세했다.

그러나 김원웅(金元雄)의원은 “이념의 ‘중간지대’가 없다. 김의원 발언 후 영남권의원들만 반기지 서울과 경기지역 의원들은 다 그냥 본회의장에서 나와 버렸다”며 못마땅해 했다.

이날 오후 여야 총무들이 만나 절충을 시도했지만 ‘속기록 삭제’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려는 한나라당과 “그 정도로는 안된다”는 민주당 주장이 맞서 협상은 무산됐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김용갑의원 발언요지▼

이 나라의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당의 정강정책까지 바꾸어 가면서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려는 일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국가보안법 개정이 가져올 미래 상황에 대한 염려나 고민은 전혀 없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에 급급한 것이다. 이러니 사회 일각에서 민주당이 조선노동당 2중대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다. 현 정권에서 추진하는 국가보안법 개정은 사실상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김용갑의원 일문일답▼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우익 성향의 재선 정치인이다.

88년 ‘중간평가를 통해 좌익세력을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수용되지 않자 총무처장관직을 내놓기도 했던 그는 현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그는 올해 초 16대 총선을 앞두고 ‘386세대’가 대거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자 “정통 보수정당으로서 당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무시한 것”이라며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전면 재공천을 요구했고, 총선 후 부총재 경선에 출마해서도 ‘보수중심론’을 주창했다.

김의원은 육사 17기로 5공 시절 안기부 기조실장과 대통령 민정수석 등을 지냈다.

다음은 김의원과의 문답 요지.

―민주당이 ‘조선노동당 2중대’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데….

“국회의원이 국민의 목소리를 의정단상에서 밝혔는데 왜 사과하나. 국회의원직을 그만두더라도 속기록 삭제를 요청하거나 사과할 뜻이 없다.”

―발언의 진의는….

“택시기사들이 ‘(민주당이 조선노동당의) 2중대 아니냐’라는 말을 한다. 사회 일각의 얘기를 간접 전달했다. 국가보안법 3조, 7조, 10조 등을 빼버리면 알맹이가 다 빠진다. 민주당이 국보법을 개폐하려 하는데, 국보법이 폐지되면 우리 사회에서 북한 노동당뿐만 아니라 자생적인 공산당도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다. 그 지령을 받은 사람이 대통령도 출마할 수 있다.”

―택시기사의 얘기가 본인의 소신과 일치하는가.

“알아서 판단하라.”

―발언 전에 당과 상의했나.

“혼자 결정했다. 당의 여러 사람이 손댈 것을 생각해, 사전 배포된 질문원고에 넣지 않고 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꺼내 읽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