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대통령 '해외순방 징크스'…서울만 비우면 정국파행?

  • 입력 2000년 9월 4일 18시 55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는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하나의 ‘징크스’가 있다. 국내 정치적으로 가장 어려운 고비 때 해외순방 일정이 잡힌다는 것이다. “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정말 기묘할 정도로 정치적 악재와 순방일정이 겹쳐 대통령 순방일정이 다가오면 불안감이 든다”는 여권 인사들의 푸념이다.

5일부터 10일까지로 예정된 유엔 ‘새천년 밀레니엄 정상회의’ 순방 일정만해도 그렇다. 한빛은행 대출사건, 민주당 선거비용실사 개입의혹 등으로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에 돌입하는 등 정국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을 비우게 된다. 한나라당은 4일 인천 장외집회에 이어 7일에는 수원이나 서울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가질 계획이다.

이같은 징크스는 김대통령의 임기 첫 해외순방 때부터 시작됐다. 김대통령이 98년 3월 취임 한달만에 영국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했을 때 국내 정치권은 김종필(金鍾泌)총리서리의 국회 인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9월 김대통령이 뉴질랜드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는 마침 방미중이었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로부터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얘기까지 들어야 했다.

김대통령이 해외순방으로 가장 ‘쓴 맛’을 본 것은 ‘옷 로비사건’의 소용돌이가 절정에 달해있던 지난해 5월 러시아―몽골 국빈방문 때였다. 김대통령은 당시 귀국보고 때 ‘옷 사건’에 깊숙이 관여된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의 퇴진시비에 대해 “마녀사냥식이어서는 안된다”고 했다가 엄청난 ‘화(禍)’를 자초했다. 일각에서는 “김대통령의 판단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었다.

김대통령 자신도 얼마전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외국에 가면 감이 떨어진다. 내가 실수했다”며 “그 다음부터는 조심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김대통령의 취임후 해외순방은 이번 밀레니엄 정상회의 참석을 포함해 모두 12차례. 그때마다 ‘간첩선 침투사건’(98년11월 APEC정상회의중) ‘한일어업협상 비준동의안 파동’(98년12월 아세안정상회의중) ‘아도니스 골프장특혜공방’(2000년3월) 등으로 거의 예외없이 정국이 시끄러웠다.

김대통령이 4일 국무회의와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6역 만찬에서 ‘국정상황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강조한 것도 해외순방 때마다 치렀던 이런 ‘값비싼 교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김대통령의 해외 활동이 빛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대통령이 외국에서의 높은 평가에 젖어 귀국후 국내정치문제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물론 김대통령의 해외순방 기간만이라도 야당이 정치공세를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김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 방미중이던 한나라당 이총재가 김대통령을 거세게 비난했을 때 한나라당내에서조차 “너무 심했다”는 자성론이 있었다.

<윤영찬·전승훈기자>ysmo@donga.com

김대통령 주요 해외순방 일정 및 당시 국내정치 상황
날짜해외순방 지역국내 정치 갈등
98.3.31∼4.5ASEM(영국)김종필 총리서리 인준동의 문제로 여야 첨예 대치.
98.6.6∼6.14미국여소야대 탈피 위한 여당의 의원 영입과 한나라당의 정권퇴진운동.
98.11.11∼11.20중국방문, APEC정상회의(말레이시아)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의 여야영수회담 내용공개 파문, 강화도 간첩선 침투 및 도주사건 발생.
98.12.15∼17ASEAN정상회의(베트남)한나라당, 한일어업협정 비준동의안 반대.
99.5.27∼6.1러시아, 몽골 국빈 방문야당, ‘옷로비’ 사건 관련 특검제 도입과 김태정 법무장관 해임 등을 요구하며 대여강경 투쟁.
99.7.2∼7.7미국, 캐나다 ‘옷로비’ 사건 특검제 도입 공방, 야당의 장외투쟁 불사 발언.
99.9.10∼9.18APEC정상회의(뉴질랜드), 호주방문이회창 한나라당총재, 뉴욕 강연회에서 김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난. 도청 감청 문제 쟁점화, 동티모르 평화유지군 파병 논란.
2000.3.2∼3.11유럽 4개국 아도니스 골프장 특혜매각 의혹 폭로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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