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선물 받지 않으려는 형님사연

  • 입력 2000년 8월 17일 19시 06분


17일 남측 이산가족들이 묵고 있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올림픽파크텔의 한 방에서는 한 60대 노인이 구석에 쌓인 짐더미를 바라보며 한숨짓고 있었다.

그는 50년만에 만난 북한의 형을 위해 25돈쭝, 10돈쭝짜리 목걸이 등 금 65돈쭝에 보약 무좀약 등 수십종의 약, 면도날 로션 등 온갖 생활용품과 계절별 옷가지까지 큰 가방에 가득 담아왔다. 또 비디오카메라로 부모님 묘소와 고향, 형의 고향 친구들을 며칠동안 찍었다. 형이 좋아하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삽입하고 북의 비디오 방식(PAL)으로 테이프를 바꾸는 등 정성껏 준비했다.

그러나 형은 이 선물 대부분을 받지 않았다. “내가 너한테 줘야지 어떻게 받나. 동생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다. 지도자 동지의 은덕으로 잘 살고 있다.”

억지로 안기자니 형이 북에 올라가 행여 책잡힐까 두렵고 빈손으로 보내자니 손마디마다 굳은살이 박힌 형의 깡마른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선물보따리에서 몇 점의 옷가지, 약간의 약과 달러만을 꺼내 건네고 나서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날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개별상봉 때 북의 형에게 줄 선물을 가방 2개에 가득 담아갔던 한 60대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형의 환갑과 칠순 잔치를 못본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데다 처음 알게 된 북의 가족들을 위해 집안 식구들이 16일 내내 시장과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산 선물이었으나 가방을 본 형은 “절대 20㎏을 넘기지 말라”고 호통친 것.

호텔방에서 형과 함께 선물 꾸러미를 끌러 ‘싸고 가벼운’ 순서로 짐을 다시 꾸리는 동생의 마음은 찢어졌다. 그는 “앞으로 형을 만나지 못할까봐 억지로 주고 싶은 마음도 참았다”며 울먹였다.

<이헌진·김승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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