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北상봉객 이내성씨에게 죽마고우가 보낸 편지

  • 입력 2000년 8월 16일 18시 56분


“자네와 난 의기투합해 극장도 몰래 잘 다녔지. 비비언 리와 로버트 테일러가 나오는 ‘애수’를 보고 가슴 설레던 것 기억나나. 선생님한테는 한번도 안 걸렸지.자네 머리와 눈썰미 좋은 건 알아줬잖아.… 자넨 엉뚱한 면도 있었지. 친구 김○○, 박△△와 셋이서 무단가출해 동네를 발칵 뒤집어놓고 1주일만에 태연히 돌아왔지. 명동에서 가수 현인이 나오는 ‘은방울 쇼’ 봤다는 자랑에 우리 촌놈들은 마른 침을 꼴깍꼴깍 삼켰지.… 자넨 우리 익산군의 최고 멋쟁이였어….”

북한 영화계의 거물, 이내성(李來成·68) 조선예술촬영부 지도교수가 상봉단의 일원으로 내려왔다는 소식에 죽마고우 문흥주(文興柱·68)씨는 반갑지만 만날 수 없는 심정을 글로 옮겼다.

문씨가 이씨 가족을 통해 16일 전한 편지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 외에도 어릴 적 친구들의 근황과 두 사람의 고향인 전북 익산시 갈산동의 변한 모습도 그려져 있다.

13일 이씨 부모의 묘소를 찾아 친아들 대신 술잔을 올리기도 한 문씨는 ‘나그네설움’ ‘대지의 항구’ ‘울고넘는 박달재’ 등 어릴 적 이씨와 함께 부르던 유행가를 직접 녹음한 CD테이프도 함께 이씨에게 선물했다.

16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오빠 내성씨와 두번째 만남을 가진 여동생 이지연(李知娟·52·방송인)씨는 “오빠가 어제 단체상봉 때 유난히 친구 소식을 많이 묻더니 오늘 친구분의 편지를 받아들고는 감격했다”고 전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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