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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8월 14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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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쌍룡동에 사는 민병옥(閔丙玉·97)할머니는 14일 낮12시 적십자사가 제공한 앰뷸런스가 집앞에 도착하자 며느리와 손자의 부축을 받으며 상경길에 올랐다.
▼설렘에 뜬눈 밤샘▼
북한에 두고 온 둘째 아들 박상원(朴相元·67)씨를 50년만에 만난다는 설렘 때문에 지난밤 뜬눈으로 지샌 민씨는 기운이 솟는 듯 차에 오르기 전 “만세”를 불러 배웅하는 친인척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오후 2시경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 도착한 민씨는 취재진의 플래시세례를 받으며 “보고 싶어”라는 말만을 희미하게 되뇌었다. 북에서 내려오는 둘째아들을 만나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400리길을 마다않고 상경한 민씨는 휠체어에 몸을 묻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혈육상봉의 기대와 설렘 앞에서 불편한 몸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남한측 상봉가족들의 숙소인 올림픽파크텔에는 검버섯 자욱한 노인들을 태운 구급차가 연방 들어서 대한적십자사에서 지원된 의료진을 긴장시켰다.
▼기력찾으려 안간힘▼
위암 2기 환자로 상봉가능성이 의문시됐던 이덕만 할머니(87·경기 하남시)도 친척들이 동원한 승합차에 실려 왔다. 가족들에 따르면 이씨는 큰아들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침에도 식사를 하며 기력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씨는 정작 도착후에는 힘에 겨운지 눈을 감은 채 휠체어에 몸을 맡겼다.
몸을 일으킬 수 없어 침대째 숙소로 이동한 노인들도 있었다. 충북 청주시에서 119구급차를 타고 상경한 박성녀 할머니(88)는 치매와 노환으로 전혀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 신기하게도 아들 여운봉씨(66)의 소식이 오기 1주전 “온다더니 왜 안와”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해 가족들은 마지막 소원을 풀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모시고 오게 됐다.
상봉가족중 최고령인 조원호 할머니(100·충남 아산시)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구급차에서 실려나와 지켜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아들 정춘모씨(63)를 만나러 온 최순례 할머니(79·경기 성남시)는 보름전에 대퇴부 관절수술을 받고 입원해있다가 병원측에 간청한 끝에 퇴원, 호텔을 찾았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찾아온다는 연락에 아픈 몸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병환중인 노인과 동행한 가족들은 이번 일정이 적잖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치매를 앓고 있는 모숙자 할머니(89·서울 성북구)를 모시고 온 가족들은 “사실 우리들은 북에 계신 친척에 대해 별 기억이 없지만 어머님 소원이라 모시고 왔다”며 “건강은 물론이고 상봉때 상대방을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준석·이기진·지명훈기자>kjs35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