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대북사업 실태]겉으론 '활발' 속으론 '미적'

  • 입력 2000년 8월 10일 18시 42분


역사적인 6·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곧 2개월이 된다. 현대 삼성 LG 등 대기업들은 저마다 대북 사업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일부 중견기업들은 외환 위기 이후 축소하거나 없앴던 대북 사업 관련 조직을 다시 정비하기도 했다.

6·15 선언 이후 삼성은 기존의 박영화(朴英和)삼성전자 부사장을 중심으로 한 대북 사업팀 외에 삼성물산 건설 부문에 새로 팀을 꾸리는 등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윤종용(尹鍾龍)삼성전자 부회장이 경협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는 등 유난히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최근 이같은 모습은 정부에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대북 사업 원칙은 기본적으로 ‘서두르지 않는 것’과 ‘수익성이 없는 것은 안한다’는 것”이라며 “이건희(李健熙)회장이 직접 평양을 방문하지 않은 것을 봐도 대북 사업에 그리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LG는 최근 기업 구조조정 계획을 밝히면서 이례적으로 총 10억달러를 투입해 휴전선 근처에 대형 물류센터를 세우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400만평 규모의 대형 물류센터로 1차로 1억8000만달러를 들여 물류센터를 건립한 후 국제회의장 테마파크 체육관 등의 설립도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구조조정 계획이 갑자기 발표된 것도 그렇고 대북 관련 사업이 포함된 것도 모양이 이상하다는 평이 많았다.

현대나 삼성에 비해 대북 사업을 소홀히 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SK는 최근 이인상(李仁相)SK글로벌 정보통신 부문 사장을 중심으로 대북 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대북 사업 아이디어를 공모하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기업들은 대북 사업에 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정부측에서 공식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일정 정도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대북 사업의 특성상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도 당장 수익이 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정부측에선 그동안 대북 사업을 사실상 독점해 오던 현대가 비틀거리면서 현대의 바통을 이어받을 후보를 찾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선 그 후보가 바로 삼성일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달 이건희삼성회장과 독대한 것과 관련, 청와대측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북 사업 창구로 현대 대신 삼성을 지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재계에서는 적지 않다.

재계의 정통한 소식통은 “지난달 이건희회장에 이어 구본무(具本茂)LG회장과 손길승(孫吉丞)SK회장도 조만간 청와대를 방문할 일정이 잡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김대통령은 주요 그룹 총수들에게 대북 사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의지를 다시 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선 “정부의 역할이 남북경협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확충하는 등 간접적인 지원에 그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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