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0년 8월 7일 19시 0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경찰서장으로 공직을 시작한 뒤 경제 관료로 변신한 인물. 농림부를 잠시 거쳤으나 농정과는 인연이 별로 없다. 군사정부 시절 호남출신으로 여당 국회의원에 당선된 바 있다. 노태우 정권에서는 환경처 차관 그리고 YS 때에는 기획원 차관을 역임했다.
산업경제연구원을 세워 유료정책자문을 하기도. 신용경제라는 잡지사도 운영했다. 광주고 1회 졸업생으로 대부격.
▼신국환 산업자원부장관▼
옛 상공부에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입안했던 정통 경제관료 출신. 5, 6공 내내 승진 가도를 달렸다 특히 통상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공업진흥청장으로 재직하면서 뇌물을 받은 혐의가 문제가 돼 불명예 하차.
박태준 전 총리와 특히 가깝다. 삼성물산 고문을 지내고 총선에 두번 도전했다가 낙선. ‘보스 기질이 있다’는 기대와 ‘흘러간 인물’이라는 반응이 교차.
▼최선정 보건복지부장관▼
보건복지부 사무관출신으로 복지부에서 27년간 잔뼈가 굵은 정통 관료. 무뚝뚝하고 깐깐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소탈하고 솔직한 성격에 친화력을 갖췄다. 새정부 출범 이후 보건복지 분야의 규제개혁을 주도.
특히 복지부차관 시절인 지난해 5월 의약계로부터 의약분업 합의안을 이끌어내는 조정능력을 발휘, 노동부장관에 발탁됐다가 이번에 친정으로 복귀했다.
▼김호진 노동부장관▼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과 노동대학원 1, 2대 학장을 지내 노동계 인사들과의 교분이 두텁고 노동문제에 대한 현실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평. 7월 금융노조 파업 당시 노사정위원장으로서 노정간 중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금융대란을 막는 등 조용하면서도 강한 추진력을 보여줬다.
국민회의 정치개혁 특위위원으로 활동하고 제2건국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
4·13 총선 때 서울 종로지구당 위원장직을 반납하고 부산 북―강서을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했지만 네티즌들로부터 격려 메일이 답지하는 등 대중적 인기는 오히려 상승. 여권내 차기 대선 후보 중 한사람으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으며 총선에서의 감투로 일찍부터 입각이 예상됐다.
13대 때 ‘5공 청문회 스타’로 두각을 나타낸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성격이 직선적인 편.
▼전윤철 기획예산처장관▼
별명이 ‘전핏대’이다. 누구 앞에서나 직언을 서슴지 않는 성격을 빗대 만들어진 것이다. 그만큼 소신이 강하다. 나라살림을 한푼이라도 아껴야 할 예산 총책임자로서 적격이다. 진념장관과 가깝다. 대인 관계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
기획원 과장 시절 공정거래법 제정을 주도했다. 공정거래위원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다. 기업들의 속사정을 꿰뚫고 있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
70년 공무원이 된 뒤 과장 국장 시절을 공정거래 업무에 종사한 ‘공정거래통’.
단구에 술을 한 잔만 하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여린 인상이지만 공무원으로서 공정거래법 박사학위 1호 소유자에다 경제법 등 7권의 경쟁법 분야 책을 쓰기도 한 실력파다. 영어와 국제 협상실력도 탁월하다는 평.
보름에 한번씩 고향의 노모를 문안하러 가는 효자.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
재무부와 국세청에서 세제업무를 주로 맡았던 재무관료 출신이다. 재무부를 나와 한국투자신탁 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기관을 거치면서 욕많이 먹어야 할 수 있다는 구조조정을 비교적 무난히 마무리했다는 평을 듣는다. 그래서 ‘팀제로 성공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개혁보다는 ‘보신’에 능한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적을 만들지 않고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다 보니 성가신 일을 삼갔다는 후문이다.
▼장영철 노사정위원장▼
정치권에 오래 몸담았지만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원만한 ‘마당발’로 통한다. 소리내지 않고 조용하게 일을 도모한다는 평.
4월 총선에서 경북 칠곡에 민주당 공천을 받았으나 막판에 민국당 이수성(李壽成)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후보등록을 포기해 당 안팎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그러나 이번 개각에서 예상외로 다시 노사정위원장에 중용됨으로써 재기에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