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탈북자 5인의 심정

  • 입력 2000년 7월 25일 19시 17분


북에 가족과 친지 등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둔 채 남으로 넘어와 정착해 살고 있는 1100여명의 탈북자들. 이들은 다음달 15일부터 사흘간 서울과 평양에서 이뤄질 남북간의 이산가족 상봉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볼까.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잘 성사되면 나중에 우리도 가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그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겠지만….”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 정치적으로 계산된 것 아니겠습니까.”

대표적으로 꼽을 만한 탈북자들의 상반된 반응이다. 일부는 ‘혹시나…’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나타냈으나 다른 일부는 남북 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 말을 아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 부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것.

94년 제3국을 통해 단신으로 탈북해 북에 아내와 어머니, 남녀형제 6명을 둔 강성산(姜成山)전북한총리의 사위 강명도(康明道·42)씨. 그는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는 걸 보면 북한 분위기도 달라지긴 달라진 모양”이라며 상당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강씨는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우리에 대해 ‘민족반역자’란 용어 대신 ‘탈북자’란 표현을 쓰는 걸 보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며 “김위원장의 발언이 북한의 권력기층에까지 전해져 가족에게도 ‘호혜’(혜택)가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귀순한 ‘양강도 저격부대’ 출신의 동일섭씨(26)도 일말의 기대를 표현했다.

그는 “남북 화해무드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이산가족 상봉은 양쪽 국민에게 장밋빛으로 비춰질 게 분명하다”며 “북에서 오는 이산가족들도 남에서 보고 느낀 것을 부분적이나마 북쪽에 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씨는 “군에서의 경험과 북측 이산가족의 명단으로 볼 때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남북 해빙무드가 아직까지 북쪽 인민들에게까지 전해지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91년5월 아프리카의 근무지에서 혼자 귀순한 외교관 출신의 고영환(高英煥·47·통일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씨는 이산가족 상봉에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고씨는 “지금의 해빙무드가 북한에 약간의 영향은 주겠지만 큰 변화는 주지 않을 것”이라며 “북측 명단만 봐도 월북자 중 성공한 사람과 체제 유지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사람이 대부분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예민한 정치적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북에 남은 가족이 보고 싶다”면서도 “북한 당국이 우리 가족까지 만나게 해준다면 통일이 다 된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96년12월 일가족 등 16명과 함께 중국 홍콩을 거쳐 남으로 온 김경호씨의 딸 명숙(明淑·39)씨는 “남북 정상이 만난 것 자체는 잘 된 일이지만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남한 사람들이 마치 곧 통일이라도 될 듯이 흥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은 북쪽이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고려해 받아들인 것으로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북한이 정말 변해 우리도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91년 탈북해 북한음식 전문체인점 모란각 대표이사를 맡는 등 남한 정착에 성공한 김용씨(40)는 “우리 같은 탈북자에게 가족 상봉의 기회가 오려면 5년 이상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기대반 회의반’의 심정을 나타냈다. 그는 양친이 모두 세상을 떠났고 스케이트 국가대표선수였던 형님마저 행방불명이라 북쪽에 누님 한 분만 남았다.모란각 지점 개설차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김씨는 “탈북자 가족은 6촌까지 북한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기 때문에 남으로 넘어 온 사람도 늘 그 점이 부담스럽다”며 “북한에 남은 가족을 상봉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진녕·이승헌기자>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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