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김정일의 모습은]명민-호탕…南사정 밝아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29분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 지도자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비교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충격을 주고 있다. 2박3일간의 회담일정을 통해 드러난 그의 모습을 몇가지로 유형화해 본다.

▼명민-호탕…남쪽사정 밝아▼

▽‘정상적인 지도자’ 김정일〓고려대 유호열(柳浩烈)교수는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김정일위원장이 지극히 정상적인 지도자라는 점이 확인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실 회담에서 드러난 김위원장의 모습은 명민하고 호탕해 보였다.

“김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는 뼈있는 농담을 하는 등 자신이 서방세계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도 간파하고 있었다. “남쪽에서는 광고를 하면 잘 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실리만 추구하면 된다”고 말하는 등 남쪽 사정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은 편이었다.

▼'용순비서' 호칭등 거침없어▼

▽권력자 김정일〓회담 기간에 비쳐진 김위원장은 명실상부한 북한의 최고권력자였다. 북한 군부 최고실력자인 조명록(趙明祿)인민군총참모장을 자신의 순안공항 영접과 김대통령 환송오찬에 대동한 점, 김용순(金容淳)아태평화위원장을 ‘용순비서’라고 거침없이 부르는 태도 등이 단적인 예. 단정적이고 자신있는 말투와 다소 거만하게 보이는 걸음걸이, “힘들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다”는 등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화법 등은 어려서부터 익힌 ‘제왕학’에서 비롯되지 않았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그러면서도 ‘동방예의지국’을 찾으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깍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김일성(金日成)주석 생존시 북한 2인자로서 배운 ‘생존기법’이 아니겠느냐는 것. 황장엽(黃長燁)전북한노동당비서는 “김정일은 중학생 시절에 50세도 안된 건장한 김일성을 옆에서 부축할 정도로 권력지향적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차량동승등 극적 효과▼

▽‘연출가’ 김정일〓김위원장은 순안공항 영접 및 차량 동승 등 극적인 상황 연출에 능했다.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의 오랜 통치기법의 하나. 김위원장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문화예술지도과장(68년) 선전선동부 부부장(69년) 등을 거치며 사회주의 선전기법을 배웠고 ‘피바다’ ‘꽃파는 처녀’같은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또 적절한 유머로 좌중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능력도 보였다. 그 중에는 “걱정하지 마십시오”(안주섭경호실장에게) “이산가족이 되면 안됩니다”(14일 만찬 석상에서 김대통령과 다른 테이블에 앉은 이희호여사에게) 등 현재의 정치 상황을 암시한 유머도 적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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