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선언이후]국민적 합의 토대로 정책결정 투명해야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29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엮어낸 ‘세기적 상봉극(相逢劇)’은 질곡과 비탄의 땅 한반도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북한식 표현 그대로 일대 ‘사변(事變)’이었다.

그리고 7000만 겨레에게는 상상을 뛰어넘어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몰아닥치는 평양발 뉴스의 홍수 속에서 모두의 가슴 깊숙이 응어리졌던 한의 올을 풀어내는 한판의 ‘씻김굿’이자, 감동적 드라마였다.

그러나 정한(情恨)과 감상(感傷)의 어법을 걷어내면 이번 남북정상간의 ‘평양이벤트’는 말 그대로 ‘첫걸음’일 뿐이다. 새 세기의 민족사를 분열과 적대에 바탕한 ‘제로 섬’ 게임의 논리가 아니라 진정한 ‘상생(相生)’의 논리로 다시 쓰기 위해서는 헤쳐나가야 할 험로와 남겨진 과제가 너무나 많다.

두 정상이 단숨에 만들어낸 ‘6·15 남북공동선언’의 내용만 보아도 정교하게 다듬고 채워넣어야 할 ‘행간(行間)’이 엄존함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이 우선 지적하는 논란거리만 해도 ‘자주적 통일’ ‘낮은 단계의 연방제’ ‘비전향장기수 문제의 해결’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각에서 이번 정상간 논의가 시종 ‘북측 주도’로 진행된 인상이 짙고, 상당부분 ‘의문점’이 내재돼 있다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데서도 향후 실천적 ‘각론’의 이행과정에서의 국민적 컨센서스 도출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내부적 분열소지를 좁혀나가고 가능한 한 넓은 폭의 국민적 컨센서스를 도출해내기 위해 정부 당국과 정치권이 외면해서는 안될 요체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의 견해는 정책결정의 ‘투명한 절차와 과정’으로 모아진다. 여야건, 남북이건 정파적 이해를 앞세워 상황을 이용하려 할 경우 결코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얘기다.

서강대 손호철(孫浩哲)교수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엄밀히 말해 유보된 지지”라며 “정부는 여론을 한쪽으로 몰고가려 하기보다는 투명성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며 국론을 모아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또 한가지 이번 정상간 논의과정에서 주변 4강 등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배려가 거의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의문’의 포인트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 공성진(孔星鎭)한백연구소장은 “푸틴 러시아대통령의 예정된 방북이 암시하듯 4강은 이미 한반도 이해관계에 신속하게 뚫고 들어오고 있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한미일 공조보다 크게 앞서 나간 우리의 행동을 4강의 상충하는 이해와 어떻게 조정해 나가느냐가 간단치 않은 과제”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다. 국제정치적 관점과 함께 경제적 측면에서도 정교한 ‘청사진’조차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번 ‘평양 대역사(大役事)’로 세기적 대변혁의 진앙이 된 한반도가 혼돈과 혼란이 아니라 희망과 미래의 땅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 정부 당국과 정치권이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은 국민적 컨센서스를 토대로 한 투명하고 정교한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고도 긴요하다는 점이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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