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경비정 침범]南-일과성 판단, 北-「분쟁수역 만들기」

  • 입력 1999년 6월 14일 19시 20분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침범은 크게는 NLL과 정전협정 체제를 무력화하고 작게는 꽃게잡이 수역을 확대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도발행위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생에서 장성급회담 개최를 하루앞둔 14일까지의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발생〓북한의 이상징후는 6일 시작됐다. 북한은 이날 중앙방송을 통해 “5일 남조선 괴뢰들이 강령군 쌍교리 동남쪽 우리(북한)측 영해 깊이 전투함선을 불법 침입시키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고 보도한 것.

느닷없이 우리측의 영해침범을 주장한 북한은 7일 오전9시10분 경비정 1척을 시작으로 모두 3척이 인천 옹진군 연평도 서쪽 10㎞해상에서 NLL남쪽으로 침범해 오후7시까지 머물다 되돌아갔다.

우리 해군은 곧바로 고속정 편대와 경비함을 출동시켜 대응에 나섰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북한경비정의 NLL 침범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북한경비정과 어선의 NLL 침범은 해마다 20차례 가량 있어왔던 일로 우리 해군이 경고방송을 하면 곧바로 돌아가던 전례에 비추어 이번에도 ‘일과성’으로 끝날 것이라 판단한 것.

▽경과〓그러나 북한은 8일 이후 계속 NLL을 침범했다. 경비정 숫자가 8척까지 늘어났고 NLL 남쪽해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으며 우리 고속정에 일부러 돌진하기도 했다.

정부는 그제서야 북한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고 파악하고 북측의 도발적 행위를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나 9일 발표된 국방부 대변인 성명은 ‘북한 경비정의 NLL 월선(越線)’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 점으로 미뤄 이때까지도 군당국은 ‘적절한 대응책’을 놓고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관할수역을 북한이 수시로 넘나드는데도 정부가 방관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군당국은 11일 ‘충돌식 밀어내기’작전으로 북한 경비정을 밀어붙였다.

북한은 유엔사의 비서장급 회담제의(9일)와 장성급 회담제의(11일)를 거부하다 11일 우리 해군의 적극적인 저지작전으로 경비정 4척이 심하게 손상되자 장성급 회담제의를 12일 수락했다.

6일에 있었던 북한 중앙방송의 내용, 7일부터 시작된 NLL침범, 그리고 비서장급 회담과 장성급 회담 제의를 거부했다가 2차 제의를 수락한 과정에서 보듯 북한은 NLL 남쪽해상을 ‘분쟁수역’으로 만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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