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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17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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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개혁 후 연구효율과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해도 무슨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생산성 제고인지 묻고 싶다. 다시 말해 단지 과학계의 효율증대만을 강조했지 과학정책 방향이 보이질 않는다는 얘기다.
▼통합-조정기능 갖춰야
정부는 개혁에 앞서 21세기 지구차원의 환경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과학정책 기조를 수립해야 한다. 우리 고유의 과학영역의 설정과 그에 맞는 국가적 목표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정부는 과학계의 통합조정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대학 출연연구기관 산업계뿐만 아니라 기능별 전문기관들간 유기적인 연동성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과학정책과 과학현장이 같은 주제곡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가 추진중인 과학 통합조정기구의 발족은 의의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통합조정기구는 분명히 단일독립체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과학투자재원과 전문인력이 풍부하다면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차원에서 다원체제도 가능하나 현재로선 시기상조다.
과학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하고 싶다. 그동안 정부는 거의 매년 새로운 정책사업을 내놓았다. 일면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사실 정책의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에 혼선만 조장한 셈이다. 좀 심하게 표현한다면 국가 과학역량의 분산책이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에 따라 과학현장은 계속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해왔다. 매년 옮겨심는 과일나무에서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과학정책 관리의 지속성과 전문성이다. 정책관료와 실무관리의 잦은 경질로 과학정책의 책임성과 함께 과학관련 부처의 무용론까지 대두된 것도 사실이다. 이는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21세기 산업사회의 꽃이라 일컫는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지난 10여년간 전문적 지식을 갖춘 실무관리가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과학정책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각종 정책사업의 허울좋은 명칭 전시장이 되었다. 그에 따라 정책사업의 선정과 도입시기를 놓쳐 왔으며 연구사업의 투자우선순위가 불투명해졌다.
가장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요소가 정부 부처의 상층부에서 발생한 셈이다. 그에 따른 손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지금과 같이 정부 수뇌부 어디에도 과학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의 과학 백년대계를 세우고 추진해 나갈 것인지 의문이다.
과학계의 생산성은 연구성과에 대한 엄중한 평가로부터도 나온다. 연구성과의 책임소재에 따라 연구투자를 집중할 수 있고 또 과감히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학계 구조조정의 올바른 길이다. 물론 인원축소와 기구조정에 따른 산술적인 적정성도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소재가 명확해진다면 연구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체 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개혁의 칼을 빼지 않아도 될 사안에 명분없이 나선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출연 연구기관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운영철학이다. 한마디로 ‘자율성’이다. 그래야 전문특성에 맞는 창조적인 연구풍토가 조성되고 인재가 모이기 때문이다.
▼연구성과 엄중 평가를
과학투자의 적정성이 산정돼야 한다. 획일적인 경제논리만으로 과학기술투자의 우선순위와 경중을 가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책에 따라 투자와 예산을 관장하는 독립적인 기구와 전문관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실효적인 투자와 지속성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정부는 경제난국의 타개책으로 금융계 지원 및 부채탕감 등에 수십조원을 투입하고 있다. 가령 그 일부만이라도 과학분야 어느 한곳에 집중 투자한다면 우리의 21세기는 분명히 밝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현재 규모의 과학투자만으로는 과학 한국의 허상만 안겨줄 뿐이다. 21세기 문턱에서 과학입국을 위한 정부의 현명한 결단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하다.이대실(생명공학연구소 유전체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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