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해씨 자해 파문]배후규명 확대수사 「올스톱」

  • 입력 1998년 3월 22일 19시 53분


예상치 못한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의 자해사건으로 당황했던 검찰과 안기부는 휴일인 22일을 넘기면서 안정을 되찾고 북풍공작사건 수사를 당초 계획대로 조기에 마무리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검찰과 안기부는 우선 권전부장의 자해소동을 ‘개인적인 일’로 치부함으로써 사건의 파문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다소 차질이 빚어졌지만 검찰은 당초 의도했던 대로 수사 페이스를 유지하겠다는 자세다.

수사 책임자인 김원치(金源治)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이 22일 브리핑에서 “권전부장이 최고정보기관의 수장(首長)으로서 모든 진실을 밝히고 부하들에 대한 선처를 요청했으면 받아주었을텐데 그렇지 않아 유감이다”고 한 것은 그런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안기부 핵심 관계자가 “권전부장은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이라고 비난하면서 “그의 행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발언은 권전부장의 부하들을 추가로 형사처벌하겠다는 쪽보다는 권전부장의 정당성을 약화시켜 그의 자해소동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북풍공작사건의 파문이 계속 이어질 경우 경제회생과 남북관계 정상화 등 당면한 국가적 과제를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섣불리 사건을 확대할 경우 권전부장의 자해소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세력의 조직적 저항에 말려들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안기부는 이에 따라 권전부장의 상태를 보아가며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이로써 재미교포 윤홍준(尹泓俊)씨 기자회견사건의 배후규명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자해소동이 있기 전만 해도 “권전부장의 진술에 따라 이병기(李丙琪)전안기부2차장을 소환할 수도 있다”고 밝혔으나 22일에는 “이전차장에 대한 소환계획이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정치권의 ‘핵폭탄’으로 등장할 수도 있는 권전부장 ‘윗선’에 대한 수사도 당분간 어렵게 됐다.

안기부 관계자는 “당초 계획은 권전부장을 구속한 뒤 기소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그의 입을 통해 윗선에 대해 조사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자해소동으로 확대수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권전부장을 형사처벌하는 것과는 별개로 공작원 ‘흑금성’ 박채서(朴采緖)씨와 권전부장의 관계, 정치인들의 북풍조작 관련여부, 오익제(吳益濟)씨 편지사건 등에 대해 비공개적인 진상조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들 사건에 대해서는 현재 안기부가 자료를 수집하는 등 진상을 규명하고 있어 이 자료가 검찰에 넘어오는 시점이 바로 북풍수사가 총체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검찰과 안기부의 북풍수사는 한나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어 정치권의 기류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수형·조원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