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인준 국회표결]초조…착잡…JP의 길었던 하루

  • 입력 1998년 3월 2일 20시 08분


국무총리지명자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는 ‘결전의 날’인 2일 오전 내내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머물다 점심식사를 한 뒤 오후에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는 의원회관 사무실을 홀로 지키면서 초조하게 본회의장 상황을 주시했다. 당초 JP는 자신의 신상에 관한 투표에 참여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단 한표가 아쉬운 상황이고 단호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당직자들의 강권에 따라 투표에 참여키로 결정했다.

자택에서 JP를 모시고 나온 김용환(金龍煥)부총재와 이양희(李良熙)의원은 JP의 심기를 묻는 질문에 “평상심 그대로다. 담담하시더라”고 전했다. 이의원은 특히 “일이 잘 될텐데 걱정할 일이 뭐가 있느냐. JP는 언제나처럼 한결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JP의 초조하고 착잡했을 심경은 누구도 설명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JP에게 총리인준 표결결과는 앞으로 남은 정치인생을 가름하는 중대사가 아닐 수 없다.

JP의 평소 표현대로 ‘얼마 남지 않은 몇 마일’을 마저 가느냐, 아니면 중도에서 주저앉느냐를 결정하는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JP의 심경은 당직자들의 불안해 하는 표정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한결같이 안절부절못하는 당직자들의 표정에서 JP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정무(李廷武)원내총무는 “오늘은 누가 무슨 우스갯소릴 해도 웃을 수가 없다”며 하루종일 굳은 얼굴을 펴지 못했다.

물론 JP는 이같은 시련에 익숙해져 있어 낯선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젊은 나이에 ‘5·16거사’에 참여했고 여러차례 권력투쟁의 희생물이 되어 ‘자의반 타의반(自意半 他意半)’외유를 떠나기도 했다. 한때 부정축재자로 몰려 정치적 ‘금치산자’ 선고를 받기도 했고 몇년 전에는 민자당내 민주계에 의해 ‘용도폐기’당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그런 ‘풍운아(風雲兒)JP’에게 이날 총리인준은 한번쯤 넘겨야 할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JP에게 이날 하루는 말그대로 ‘일일 여삼추(一日 如三秋)’를 온몸으로 실감해야 했던 하루였다.

〈이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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